고용형태, 임금분포 공시…기업 속살 드러내라는 정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8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임금분포공시제 도입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기업의 고용형태를 공시할 때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는 것도 모자라 기업내 성·연차·직무별 임금 수준을 드러내는 '임금분포공시제' 도입을 추진한다. 기업간 계약관계와 구체적인 인건비 집행 내역 등 영업비밀까지 건드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정책기본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내년부터 기업들은 같은 사업장 안에서 일하는 외주업체 소속 파견직, 하청 직원들도 모두 포함해 고용형태를 공시해야 한다.


2014년부터 시작된 고용형태공시제는 3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의 고용 현황을 공시하는 제도다. 과도한 비정규직 사용이나 간접고용을 자제시키는 게 목적이다. 올해 기준 공시대상 기업 3418곳 중 3407곳(99.7%)이 이 제도를 지키고 있다.

고용부는 내년부터 고용형태공시제에 파견직 등을 포함해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사업주들이 외주·하청을 줄이고 되도록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경영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업장 내의 외주·하청업체 직원들의 근무 규모와 형태가 드러나면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해당 기업의 계약관계 전반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14년 이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은 거의 변하지 않아 기존 제도의 실효성조차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형태공시제 강화와 함께 고용부가 내년에 도입할 예정인 임금분포공시제 역시 기업에게는 민감하다. 임금분포공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등장했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지난 8월 인사청문회에서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청문회 당시 김 장관은 "성별에 대한 정보를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임금분포공시제를 도입하면 성별 임금격차뿐 아니라 한 기업 안에서 연차별, 직무별로 어떻게 임금이 달라지는지 구체적인 숫자가 드러난다.

고용부는 임금분포공시제를 추진하기 위해 노동연구원과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등에 연구용역을 줬다. 올해 말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중 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 관계자는 "임금분포공시제의 항목을 어떻게 만들지 연구용역을 준 것"이라며 "현재 각 사업장의 임금실태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해 어떤 항목별로 나눌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임금분포공시제를 통해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진 '연봉 비밀주의'를 없애려고 한다. 근로자의 임금 결정 협상력을 높여 결국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고 대·중소기업 사이, 일반직원·임원 사이의 임금격차 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공시제가 결국 경영활동을 제약할 것으로 본다. 임금 책정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영전략에 해당하는데, 이를 정부가 통제하면 경영 자율성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노사갈등과 사회적 위화감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강력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들은 협상력을 더해 높은 임금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노조의 울타리 밖에 있는 근로자들은 임금격차를 인지할 수만 있고 협상 결정력은 가져올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제도의 도입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주요 선진국 중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같은 노동시장 규제책은 노동경직성을 심화해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