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339.17 827.84 1115.30
보합 15.72 보합 6.71 ▼5.1
메디슈머시대 (7/6~미정)
블록체인 가상화폐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관련기사126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비운의 왕, 단종의 흔적을 찾아가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4.21 08:09
폰트크기
기사공유
단종이 묻혀있는 장릉.
단종이 묻혀있는 장릉.



봄이라고 어찌 기쁜 일만 있을까. 사람과 환경에 따라서는 환하게 피는 꽃조차 슬퍼 보일 때가 있다. 여행이라고 어찌 꽃동네만 찾아다닐까. 먼저 걸어간 이들의 발자국을 거울삼아 지금의 나를 비쳐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다. 이 땅에 펼쳐졌던 역사에서 가장 슬픈 기록을 꼽으라면 단종의 짧은 삶과 죽음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겨우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열다섯 살에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강제로 물러난 뒤 열일곱 살에 세상을 달리했다.

슬픔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 강원도 영월로 간다. 비운의 왕이 묻힌 장릉이 목적지다. 관풍헌에서 짧은 일생을 마친 단종은 죽어서도 한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니, 시신조차 버려졌다. <아성잡설(鵝城雜說> <축수록> 같은 야사에는 ‘강물에 던졌는데, 옥체가 둥둥 떠서 빙빙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가냘프고 고운 열 손가락이 수면에 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의 죽음과 관련해서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은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가 하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고 써놓았다. 하지만 이 기록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스로 목을 매었다는 것도 의심스럽지만, 예로써 장사지냈다면서 어찌 241년이나 지난 뒤 암장지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을까. 단종은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다시 왕이었음을 인정받는다. 왕위를 찬탈한 숙부는 조카를 죽였다는 기록까지는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거짓 역사를 남겼을 것이다.

단종의 최후와 관련 가장 널리 회자되는 것이 금부도사 왕방연을 통해 내린 사약을 받고 생을 마쳤다는 설이다. 여기에도 이설은 있다. <병자록(丙子錄)>에는 사약을 들고 간 왕방연이 머뭇거리자 노산군을 모시던 통인 하나가 활줄에 긴 노끈을이어서 앉은 자리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당겼다는 기록이 있다.

장릉 앞에 서면 단종보다는, 호장 엄흥도(嚴興道)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후환이 두려워 누구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을 때, 엄흥도는 장례를 치르고 몸을 숨겼다. <영남야언> <병자록>에는 ‘호장 엄흥도가 통곡하면서 관을 갖추어 이튿날 아전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군 북쪽 5리 되는 동을지(冬乙旨)에 무덤을 만들어서 장사 지냈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기록에 얼른 믿음이 가지 않는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엄명이 있었다는데 당당하게 장례를 치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몰래 지고 가서 암장했다는 쪽에 훨씬 마음이 간다.

그런 사실을 뒷받침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장릉 자리는 원래 영월 엄 씨의 선산이었다고 한다. 엄흥도가 왕의 시신을 지고 산으로 올라갔지만 눈이 쌓여 묻을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데 노루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났다. 그 자리를 보니 눈이 녹고 온기가 남아있었다. 엄흥도가 다시 지게를 지고 일어서려니 지게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루가 있던 자리에 시신을 묻은 뒤 계룡산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3년 상을 치렀다고 한다.


장릉은 다른 왕릉들과는 구조가 조금 다르다. 보통은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길이 一자로 되어 있지만 이곳은 ㄱ자로 꺾여 있다. 정자각과 능으로 가는 길도 각각 다르다. 애당초 왕릉을 쓰려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터를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왕릉에도 망주석과 문인석만 있을 뿐 병풍석도 무인석도 없다. 저승에 가서도 지켜줄 장군 하나 거느리지 못한 셈이다.

장릉 아래에 있는 정자각과 비각.
장릉 아래에 있는 정자각과 비각.

장릉 앞에는 ‘精靈松(정령송)’이라는 소나무가 있다. 1999년 남양주의 사릉(思陵)에서 옮겨온 소나무다. 사릉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 씨가 묻힌 능이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청계천 영도교에서 헤어진 뒤 끝내 재회하지 못했다. 남편과 생이별한 정순왕후는 1521년 82세로 생을 마감했지만 죽어서도 함께 하지 못하고 남양주에 묻혔다. 수백 년이 지난 뒤 소나무를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능에서 내려와 단종역사관, 합동 위패를 모셔놓은 장판옥, 제를 지내던 우물 영천(靈泉), 엄흥도정려각 등을 돌아본다. 걷는 내내 비운의 소년 왕을 생각한다. 단종, 그보다 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이도 있을까. 스스로의 의지로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 왕. 그보다 더 큰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 절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절망의 끝에서 기어이 희망의 씨앗을 찾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이른다. 한낮인데도 멀리서 소쩍새 한 마리 붉게 운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비운의 왕, 단종의 흔적을 찾아가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4월 20일 (08:09)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