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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임박…정약용 목민심서로 본 ‘목민관’의 조건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84 – 정약용 : 목민관에 나라 운명 건 실학자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입력 : 2018.06.02 06:33|조회 : 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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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임박…정약용 목민심서로 본 ‘목민관’의 조건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한다. 호구를 늘린다. 학교를 일으킨다. 군사를 훈련시킨다. 부역을 고르게 한다. 송사를 잘 처리한다. 아전들의 농간을 없앤다.”

조선시대 지방 수령이 힘써야 할 일곱 가지 일, ‘수령칠사(守令七事)’다. ‘경국대전’에 명시된 칠사는 지방관의 인사고과에 쓰였다. 수령에게 행정, 경제, 교육, 군사, 형법 등에 두루 능한 팔방미인이길 요구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그들을 ‘목민관(牧民官)’이라고 불렀다. 백성을 기른다는, 유교국가의 이상이 담긴 호칭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그 목민관의 도리와 지침을 제시한 책이다. 이 48권의 역작은 4년마다 지방선거를 치르고 풀뿌리 일꾼들을 선출하는 오늘날, 더 빛을 발한다. 과연 시대를 초월한 목민관의 조건은 무엇일까?

때론 개혁가였다가 때론 명탐정이었다가, 드라마에서 정약용은 자유분방하고 다재다능한 인물로 그려진다. 실제로 다산은 지방 수령의 요건이라 할 팔방미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남인 실학자인 그는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18세기 후반 조선의 개혁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노론 벽파가 집권하자 시련이 닥쳤다. 이듬해 터진 신유박해는 천주교를 받아들인 남인 선비들을 겨냥했다. 정약용의 매형 이승훈과 셋째형 정약종이 처형당했고, 다산 또한 둘째형 정약전과 함께 머나먼 남녘땅으로 유배를 떠났다. 전라도 강진에서 그는 무려 18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기약 없는 유배 죄인이 된 덕분에 다산은 오로지 저술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라의 개혁방안을 집대성한 ‘경세유표(經世遺表)’, 재판부터 법의학까지 형법을 망라한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기념비적인 저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목민심서’는 지금도 정약용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만큼 그의 대표작으로 통한다.

그럼 다산은 어째서 목민관에 주목했을까? 여기에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정신이 투영돼 있다. 그는 학문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백성들에게 ‘나라님’은 도성에 있는 임금이나 조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멀리 떨어진 존재였다. 반면 목민관의 처신과 업무는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었다. 어찌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건 목민관 하기 나름인 것이다.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이것이 집안을 바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 수령의 지위가 존귀해지면 가족들부터 속이고 저버리기 일쑤다. 예컨대 그 아버지가 송사(訟事)와 옥사(獄事)를 팔아서 이를 비방하는 자가 경내에 그득하게 된다.”

정약용은 목민관의 조건으로 우선 청렴성을 들었다. 지방 수령은 자기 혼자 규율한다고 ‘청백리(淸白吏)’가 되는 게 아니다. 부모, 형제, 처자를 비롯해 온 집안이 청탁과 뇌물을 경계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수령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교정치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홀아비(鱞), 과부(寡), 고아(孤), 늙어 자식 없는 사람(獨)을 사궁(四窮)이라고 한다. 늙은 홀아비와 과부로서 자식이 없는 사람에게 달마다 곡식을 3~5말씩 지급한다. 또 부역을 전부 면제해 주고 편안하게 살도록 돕는다.”

목민관의 또 다른 조건은 애민(愛民), 즉 백성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다. 다산에게 애민은 책상머리에서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었다. 한 가구 한 가구 사정을 들여다보고 궁한 사람들은 관에서 보살펴야 한다. 나아가 그는 재난에서 구하는 일도 애민의 일환으로 바라봤다.

“불을 끄느라 머리를 그을리고 이마를 데는 수고가 미리 굴뚝을 돌리고 땔감을 불 가까이에서 치워버리는 것만 못하다. 마을마다 못을 파고 통을 마련해 물을 저장해둘 일이다. 또 평양, 전주 같은 큰 도시에서는 수총(水銃) 10여 구를 준비해야 한다.”

정약용은 재난의 뒷수습보다는 대비와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흥미로운 점은 ‘수총’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총은 수레에 놋대야와 나무통을 설치하고 발판을 밟으면 물을 쏠 수 있는 진화장비였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등장하는데, 중국에서 쓰던 이 신문물을 도입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목민관이 이런 기발한 생각들을 실천에 옮기려면 수족이 되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아전들이 고분고분하면 수령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저들은 여관집 주인과 같아 도성에서 온 손님을 상대하는 데 능숙하며 오히려 농락하기 일쑤다. 아첨하는 자는 충성하지 않고, 쓴소리 하는 자가 배반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실수하는 일이 적다.”

예나 지금이나 목민관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인사다. 정약용은 수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아첨의 장막을 걷고, 쓰디쓴 실상을 전해주는 이들을 중용하라고 충고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야 말로 선정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다산 자신도 겨와 쭉정이를 섞은 쌀을 백성들에게 빌려주고선 몇 배로 거둬들이고, 어린아이와 죽은 사람을 군적에 올려 군포를 뜯어내는 지방의 실태를 오롯이 책에 담았다.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다. 하지만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어디까지나 정약용의 ‘마음(心)’일 뿐, ‘나라님’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조선은 망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관을 바로 세워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했다. 그 ‘경세치용’의 실학정신은 오늘날 풀뿌리 지방자치로 되살아나고 있다.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고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기에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린다. 내 삶터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꽃피우려면 누구를 뽑아야 할까?

권경률 역사칼럼니스트
권경률 역사칼럼니스트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6월 1일 (09:33)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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