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론' 띄운 국민의힘…스무살 여가부의 운명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이 잇따라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꺼냈다. 내년 대선을 앞둔데다 최근 젠더 이슈와도 맞물렸다.

야권 대선 후보들의 폐지론 주장에 여가부는 신중한 모습인 한편 여성계에서는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뿐만 아니라 야권 여성 의원을 중심으로도 비판이 나온다.
유승민·하태경, 대선 앞두고 "여가부 폐지"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때도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가부와 다른 부처 간 중복사업은 해당 부처에 맡기고 관련 예산은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위해 써야한다는 주장이다.


유 전 의원은 "여성가족부가 과연 따로 필요할까?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다"며 "여가부라는 별도의 부처를 만들고 장관, 차관, 국장들을 둘 이유가 없다.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유 전 의원은 "여성의 건강과 복지는 보건복지부가, 여성의 취업, 직장내 차별, 경력단절여성의 직업훈련과 재취업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창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지원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성범죄와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문제는 법무부와 검찰·경찰이, 아동의 양육과 돌봄 문제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담당하면 되고 담당해야 한다"며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이 모든 사업들은 여가부 아닌 다른 부처가 해도 잘할 사업들이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 중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의원도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 젠더갈등해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같은날 열린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 모임인 '요즘것들연구소' 시즌2 출범식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여가부는 사실상 젠더갈등조장부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같은날 SBS 인터뷰에서 "여가부는 빈약한 부서를 갖고 캠페인을 하는 역할로 전락해 버렸다"며 "그렇게 해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해도 잘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부라는 힘 약한 부처를 하나 만들어놓고 모든 걸 몰아주고 여성을 절대 소수자로 몰아넣고 거기에 따라서 계속 캠페인을 하는 그런 방식은 이제 한 15년, 20년 정도 시행착오를 거쳤으면 됐다"고 덧붙였다.

때마다 되풀이되는 '무용론·폐지론'야권에서 제기된 여가부 폐지 주장은 2030 남성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확인한 젠더 이슈의 파급력을 확인한 만큼 내년 대선을 앞두고 화두로 던졌다는 분석이다.

여가부에 대한 조직 개편 논의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한 여가부는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폐지, 격하 등 다양한 조직 개편론에 직면해왔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조직을 운영해왔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여성부는 여성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 만의 부서"라며 여가부 폐지를 시도했으나 야권의 반발에 부딪혀 여성 업무만 전담하는 여성부로 축소시키기도 했다. 당시 여권에서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여성 및 보육정책 등 기존 사무를 보건복지부에 이관시켜 보건복지여성부로 개편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김희정 전 여가부 장관은 양성평등가족부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최근엔 젠더 이슈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폐지론이 제기된다. 지난해에는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여가부 폐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여권 정치인들의 허물에 대한 여가부의 대응이 미온적이고 미흡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7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청원'이 나흘 만에 10만 명 동의를 얻었다.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아세안 청소년 서밋 한국 참가자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7.6/뉴스1

신중한 여가부…여성계 "책임 전가, 질 낮은 꼼수"야권 대선 주자들의 여가부 폐지 공약을 밝힌 것에 대해 여가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사실 정책효과가 부족하다는 것하고 그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기구가 없어져야 된다고 하는 것하고는 별개"라며 "저희가 더 노력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공공기관 성폭력 사건 피해자 보호와 조치 강화 브리핑에서 여가부 폐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조금 더 분발하라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모든 정책이라는 게 사회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말했다.제도개선을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소를 운영하고 법률지원도 하고 있다. 이런 분들이 우리 여가부가 없다면 어디에서 이런 도움을 받으실 수가 있겠나"라며 "저희의 도움을 필요로 아시는 분들을 위해서 항상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한 여가부 소속 공무원은 "예산도 부족하고 권한도 적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비판 여론에 매번 직면하면서 무엇을 해도 욕을 먹는다는 패배주의가 부처 내에 팽배하다"고 말했다.

여성계는 비판적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6일 논평을 통해 "여가부와 여가부 장관에게만 과도한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것은, 실질적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 정치인들이 했던 각종 비위와 잘못된 관행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질 낮은 꼼수"라고 말했다.

여.세.연은 공군 성폭력 사건과 성비위 교사 등의 예시를 들고 "정부 부처 내에서 일어나는 상급자에 의한 성비위 사건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부처들이 여성가족부보다 젠더 관점에 기초한 정책을 잘 수행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이들은 여가부 장관 인사에 대해서도 "모든 부처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수많은 자리들이 대선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는 전리품으로 전락했다"며 "그럼에도 여성가족부 장관만이 능력 없고 자격 없는 전리품 인사로 취급되는 것은 여성의 성취를 특혜로 인식하는 기존 남성 중심적 시각의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안에서도 "분열의 정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6일 "용어 자체가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여성할당제를 양성평등제로 바꾸고, 여가부를 양성평등부 등으로 바꾸거나 보건복지부와 업무를 조정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양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부처나 제도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거나 그것을 통해 한 쪽의 표를 취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결의 '분열의 정치'"라고 말했다.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도 폐지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윤 의원은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청소년, 다문화가정, 성폭력에 대한 보조 등을 여가부에 떼어놓은 이유는 다른 부처에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부처 폐지를 논의하려면) 이 기능의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구상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2018년 미투 운동이 시작된 후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최근 공군 이 중사를 비롯해 (여성들이) 성추행 등으로 괴롭힘 받는 문화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남성 권리를 축소하고, 잘못된 페미니즘에 기반한 역차별 제도를 만들어 남녀 갈등을 야기한다는 '여가부 만행'의 가짜 뉴스를 통해 여성혐오 현상까지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