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데뷔 백지연 "'치과의사 모녀살인', 내 친구 사건 모티브"

3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첫 장편소설 '물구나무' 출간 기자간담회를 연 방송인 겸 작가 백지연. 그는 "소설을 쓰면서 '힐링'하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며 "소설은 어제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얘기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앵커로 시작해 기자, 인터뷰어 등을 거쳐 에세이 9권까지 내 중견(?) 작가 칭호까지 얻은 백지연이 소설가로 데뷔했다. 첫 장편소설 ‘물구나무’는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싶었던 그의 소망이 실현된 결실이다. 그는 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이가 20세때 책 10권을 내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시간을 앞당겼다”고 웃었다.

에세이에서 소설로 방향을 튼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옛 친구가 당한 끔찍한 사건을 허구로 편집해보고 싶다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하나의 팩트에 두 가지 진실이 대립하는 상황에 대한 반감과 한계였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처음 ‘힐링’을 느꼈다고 했다. 에세이 쓸 땐 몰랐던 글쓰기의 재미에 빠져 점심도 굶고 8시간을 내리 앉아 원고를 뒤적거릴 정도였다.

“방송 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그 어떤 것도 남는 게 없는 허무감이 거세게 밀려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 일을 기록하며 뭔가를 채우려했던 것 같아요. 시사프로그램은 끝나고 나면 모두 ‘어제’의 일로 남지만, 소설은 ‘현재와 미래’를 담는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그 미래를 보며 과거의 시간들을 오롯이 품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소설에는 여고 단짝 친구 6명이 나온다. 민수라는 1인칭 화자가 인터뷰어가 되어 27년만에 만난 5명의 친구들과 인터뷰하면서 뜻밖의 사건을 접하고, 인생의 아이러니한 단면들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사소한 다툼으로 헤어진 친구들이 모이게 된 것은 하정의 죽음 때문. 극 중 하정은 실제 백지연의 '절친'이며 1995년 의문사로 처리된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의 주인공이기도하다.

“그때 전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세월이 지나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억울함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 소설에서 모티프로 차용했죠. 하지만 이 소설은 그때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사건의 결과 역시 100프로 허구예요. 인간의 삶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해야 보이는 세상살이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다양한 삶을 반영하고 싶었어요.”

물구나무는 그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 몰두한 화두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물구나무서기를 못해 체육과목에서 ‘0점’을 받았던 그는 사회생활에서 양지와 음지, 대립의 상황에서 존재할 수 있는 해답찾기에 골몰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백지연은 "내 소설은 '딸바보' 아빠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며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에세이 ‘뜨거운 침묵’에서도 ‘물구나무’에 관한 화두를 많이 던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음지에 있을 땐 기회가 없는 것 같아 절망과 친해지기 쉽죠. 양지에 서면 아무리 수양이 깊은 사람이라도 자만해지기 일쑤 아닌가요? 그럴 때 우린 인생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릴 수 있을까요? 인생은 정답이 없고, 그걸 찾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은 교육받은 엘리트 여성들이 가부장적 질서에 가로막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갖가지 사연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주체성와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이 6명의 인물이 20~60대 여성들에게 동일화될 수 있는 객체로 수용되길 기대했다.

“특히 ‘딸바보’ 아빠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한 번도 여자가 돼 보지 못한 아빠들이 읽고 여성의 다양한 삶을 한번 체험해봤으면 하는 기대가 있어요."

백지연은 소설은 무궁무진한 재료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넘친다며 “앞으로 드라마 대본도 한번 써보고 싶다”고 의욕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