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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고즈넉한 절, 안성 석남사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4.1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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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영산전이다./사진제공=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영산전이다./사진제공=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산에도 들에도 꽃들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어딜 가나 꽃구경 나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꽃은 역시 찾아다니며 봐야 제 맛인 모양이다. 동네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도 많은 이들이 기어이 길을 나선다. 하긴 꽃이 아니어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기가 쉽지 않은 때이긴 하다.

하지만 모두가 꽃을 찾아 나서는 건 아니다. 그럴 때일수록 일부러 조용한 산사 같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절 앞에 '조용한'이니 '한적한'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좀 어색하지만, 꽃 피는 계절이니 그곳이라고 조용할 리 없다. 경치가 아름다울수록 발길이 잦기 마련이다. 그러니 번잡한 곳을 싫어하는 사람은 꼭꼭 숨어있는 산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경기도 안성에 갔다가 마음에 쏙 드는 절을 하나 발견했다. 안성시 금광면의 서운산 자락에 깃든 석남사(石南寺)가 그곳이다. 석남사 하면 울주 가지산에 있는 비구니 도량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겠지만, 안성 석남사 역시 그에 못지않은 천년고찰이다. 다른 일 때문에 갔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절이었는데, 고즈넉한 분위기가 무척 마음을 끌었다. 경내로 들어서는 순간 평화로운 기운이 심신을 감쌌다. 한눈에 봐도 아기자기하면서도 고운 절집이었다.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을 따로 두지 않고, 금광루라는 누각을 우회해서 들어가는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석남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20년 석선(奭善)이라는 고승이 세웠고, 고려 초기에 혜거국사가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어 타서 나중에 화덕(華德)이라는 승려가 중건했다고 한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수백 명이 참선하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웅전과 영산전 두 불전을 중심으로 요사채, 누각, 탑, 부도, 마애불 등이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서 맨 먼저 시선을 끌어당긴 건 꽤 높고 가팔라 보이는 돌계단이었다. 돌계단 없는 절이 있을 리 없겠지만, 석남사의 돌계단은 무언가 특별해 보였다. 마치 신전으로 가는 길처럼 경건함까지 품고 있었다. 게다가 계단 옆으로 길게 쌓은 담장과 어울려서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돌계단 아래에 서서 오랫동안 올려다봐도 지루한 줄을 모를 정도였다. 그 돌계단의 중간쯤 오른쪽으로 영산전이 있고, 돌계단이 끝나는 곳에 대웅전이 자리 잡았다.

영산전으로 들어가기 전 계단 양 옆에는 고려 후기에 조성된 5층 석탑 두 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원래 절 아래 있던 것을 1970년대에 옮긴 것이라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석탑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간의 지문이 손금처럼 새겨져있다. 석남사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이 바로 영산전이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를 그런 팔상도를 함께 모신 불전을 뜻하는 데, 보물 제823호로 지정된 석남사 영산전은 조선 초기~중기의 양식을 갖추고 있어서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는 대지의 단추 같은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벗겨진 단청이 세월을 말해주는 대웅전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조선 영조 1년(1725년) 해원선사가 대웅전과 영산전의 기와를 갈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전에 건립되고 18세기에 중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영산전 옆에 있는 것을 1978년에 옮겼다고 한다.

석남사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마애여래입상/사진제공=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석남사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마애여래입상/사진제공=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석남사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산길로 접어들어 500m쯤 올라가다 만나는 마애여래입상이다. 내를 따라 올라가는 숲길이 수려해서 들어서자마자 눈이 즐거워진다. 걷는 내내 청량한 냇물 소리가 마음을 씻어주고 다독거려준다. 걸음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길을 어느 정도 오르면 높이 6m, 너비 8m 정도의 자연 암벽에 새겨진 불상과 만나게 된다. 이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전기에 조성한 걸로 보이는데 통일신라 마애불의 양식을 계승하였다. 얼굴 부분이 마모된 것을 제외하면 완전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높이 4.5m, 너비 2.8m로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다.

석남사를 보고도 시간이 조금 있다면 가까이 있는 배티성지도 돌아보면 좋다. 석남사는 경기도 안성에, 배티성지는 충북 진천에 있지만 사실은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이다. 배티는 신유박해‧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숨어들었던 골짜기로,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동체)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866년 무렵에는 15곳에 이르렀던 천주교의 성지다.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과 십자가의 길 등이 조성되어 있어서 산책 삼아 둘러보기에 좋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고즈넉한 절, 안성 석남사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4월 13일 (08:41)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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