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팝콘의 유혹…알고보니 특급호텔 셰프 손맛

영화와 팝콘, 떼기 힘든 찰떡궁합이다. 스크린 앞에서 눈과 귀가 자극 받기도 전, 극장 문 앞에서부터 후각을 붙드는 팝콘은 다이어트 결심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 '참을 수 없는 유혹'의 뒤에 '셰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내 최대 영화관 CJ CGV (5,690원 ▼60 -1.04%)의 이승재(39·사진) 복합화사업팀 과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과장은 주방장 전문 양성소 경주호텔학교 양식과와 미국 일류 요리학교 컬리너리 인스티튜트 오브 아메리카(CIA)를 졸업하고 해외 5성급 호텔에서 주방장으로 활약한 일류 셰프 출신이다. 2005년 파크 하얏트 호텔 오픈 멤버로 귀국해 지중해 음식을 담당하다 일반 기업체의 메뉴개발에 뛰어들었다.

높은 수입, 최고급 호텔 주방장이라는 화려하고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에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세계적 호텔의 총주방장이 되고 싶기도 했죠. 하지만 호텔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소수의 미식가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화된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그가 처음으로 눈을 돌린 것은 피자. 한 글로벌 피자업체의 국내지사에서 R&D(연구개발)팀장을 맡으면서 프리미엄 메뉴 개발에 뛰어들었다. 국가별 피자를 선보이며 '피자를 시키면 요리가 온다'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입히자 매출은 가파르게 뛰었다.

다음 도전은 '팝콘'이다. 2년전 CGV는 이씨를 채용하며 멀티플렉스 내 '골드클래스' 음식과 팝콘 등 스낵 개발의 총책임을 맡겼다.

관객 6명 중 1명은 팝콘을 산다. 팝콘을 중심으로 극장 내 매점 매출이 빠르게 늘면서 메뉴개발은 극장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 CGV의 매점 매출도 2006년 411억원에서 지난해 784억원으로 90% 늘었다.

CGV에 합류한 이씨는 어니언·치즈 팝콘을 차례로 내놨다. 팝콘 한 종류를 개발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맛 테스트부터 원가, 식자재 납품, 유통기한, 품질관리 교육 등 전과정을 그가 총괄한다. 녹차 팝콘과 초콜릿 팝콘, 치킨팝콘까지 개발했다. 어니언과 치즈팝콘은 기존 '달콤한 맛' 만큼이나 많이 팔리는 인기제품이 됐다. 영화를 보지 않는 고객이 팝콘만을 사기 위해 차를 몰고 극장에 들리는 경우도 있다.

눅눅한 팝콘은 질겨서 맛이 없다. 일정 시간마다 온도를 점검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이 과장이 꼼꼼히 체크하는 이유다.

"급변하는 고객의 입맛을 짚어내기가 가장 어려워요. 특히 극장을 찾는 고객은 조금은 흥분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극적인 걸 원하죠. 콩가루를 입혀 인절미처럼 은은한 맛을 내는 팝콘을 만들었더니 반응이 영 시원찮더라고요."

극장이 가진 한계도 있다. 그는 "일반 식당처럼 서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객도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메뉴개발을 할 때 극장 운영의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CGV가 미국, 중국 등에 진출하면서 더 바빠졌다.

그는 "외국 현지 음식 중 극장과 궁합이 맞는 메뉴를 고민 중"이라며 "극장에서 무심코 손이 가는 팝콘 하나에도 열정과 노력이 깃들여있다는 걸 고객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