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株의 역설 "그리스, 차라리 부도나는게 좋은데"

그리스 발 금융위기가 유럽 전체로 확산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조선주가 급락하고 있다. 유럽 은행들이 그리스 회생자금 투입을 결정할 경우 선박금융의 급격한 위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해운, 에너지, 철강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업종이다. 증권업계는 이번 사태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같은 장기적 수주 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26일 오후 현재 현대중공업 (134,500원 ▼3,200 -2.32%) 주가는 전일 대비 무려 7.52% 빠진 24만6000원에 거래 중이다. 삼성중공업 (9,920원 ▼230 -2.27%)은 6.86%, 대우조선해양 (32,050원 ▼850 -2.58%)은 5.85% 각각 빠졌다. stx조선해양 (0원 %)과 한진중공업 (3,235원 ▼15 -0.46%) 역시 각각 7.52%, 8.89% 빠진 가운데 낙폭을 넓히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이른바 빅3의 주가는 이날로 사흘째 급락세다. 지난 21일 30만원을 넘겼던 현대중공업은 사흘 새 25만원선이 무너졌다. 현대중공업 주가가 25만원을 하회한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14개월여 만이다.

업계는 조선주 약세를 그리스 국가부도위기 사태와 관련해 해석하고 있다. 그리스가 자타공인 세계 최대 해운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조선업계는 그리스의 부도를 내심 바라고 있다. 그리스 자체의 몰락보다는 유럽은행들의 그리스 지원 결정이 더 큰 악재이기 때문이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원은 "그리스가 해운업계 큰 손인 것은 맞지만 선박을 발주하는데 꼭 필요한 선박금융은 독일과 프랑스 등 EU 주요국 은행이 키를 쥐고 있다"며 "이들이 그리스에 대한 지원에 착수할 경우 선박금융(대출)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럽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60%를 차지하는 절대적인 시장이다.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 역시 50% 이상이 유럽에서 이뤄진다.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유럽 선주들이 돈 주머니를 닫으면서 2009년까지 국내 조선사들은 사실상 수주가 중단되다시피 했다.

조선업계는 유럽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주 핀란드와 독일 의회서 표결되는 유럽재정안정기구(EFSF) 기능확대 승인 결과에 따라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핀란드가 담보를 요구한데다 독일 연합정부 역시 그리스의 지급불이행(디폴트)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승인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를 버릴 경우 유로존 전체에 영향이 불가피해 결국 EU가 그리스를 지원할 것이라는 의견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이 가운데 유럽 선박금융은 이미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미 유럽 소재 선박금융전문은행들이 EU로부터 선박관련 대출을 줄이라는 압박을 받아 내년 벌크선 관련 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조선사들에 대한 발주도 상반기 이미 계획됐던 물량에 그치고 있어 내년부터는 국내 조선사들의 전체 수주량 감소가 불기피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