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본질은 부의 불평등, 빈부격차 줄여야"

"1914년, 헨리 포드는 포드자동차 'T-모델' 조립라인 근로자들의 하루 8시간 급여를 5달러로 올린다고 공표했다. 8시간당 5달러는 당시 일반적인 근로자들이 받는 금액의 거의 세 배에 달했다. 포드의 이런 조치에 어떤 사람들은 포드야말로 미국 근로자들의 친구라고 칭송했고 어떤 사람들은 미친 놈이거나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역사는 포드가 옳았음을 입증했다."

▲로버트 라이시

클린턴 미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교수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 나오는 대목이다.


포드가 근로자 임금을 3배로 올리자 근로자들은 575달러짜리 포드 T-모델을 구입할 수 있게 됐고 포드가 근로자 임금을 3배로 올린 뒤 2년간 포드의 이익은 2500만달러에서 5700만달러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라이시는 지금 전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이 같은 포드의 통찰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근로자가 곧 소비자"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위기= 전세계는 과거 수십년간 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공장 자동화를 확대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내세워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려 안정적인 일자리를 축소하고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을 억제해왔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1980년대 이후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자 경제 성장의 과실은 몇몇 기업가와 금융가에게 집중되고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국가 경제는 성장하는데 자신의 삶은 점점 가난해지는 현실 속에서 중산층은 저축을 줄이고 빚을 내 소비했다. 그러다 중산층이 더 이상 빚을 내기 힘든 지경에 이르자 버블이 터지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라이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3가지 면에서 1929~1933년 대공황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첫째, 부의 불균형이다. 1928년과 2007년 모두 미국의 총소득에서 소득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23%를 넘어서며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둘째, 중산층은 2007년까지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진 탓에 국가 경제발전에 비례해 생활수준을 높이려면 저축을 줄이고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1950~80년대초 평균 9~10%였던 세후소득 대비 저축율은 2000년 중반에 3%로 떨어졌다. 가계소득 대비 대출은 1960년대 55%에서 2007년에는 138%로 늘었다. 1920~1929년에도 10년간 주택담보대출 부채가 3배로 늘었다.

셋째, 1920년대와 2000년대 모두 부자들은 국가 부의 대다수를 과점하면서 늘어난 자산으로 투기에 열중했다. 소비제품을 사는데 아무리 써도 돈이 오히려 늘어나니 이 돈으로 각종 위험자산 투자에 골몰했고 이 결과 원자재 가격과 전세계 주가는 급등했다.

◆불균형 해소 못하면 더 큰 위기= 라이시는 1930년대 대공황의 교훈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각국 정부가 재정을 풀고 금리를 낮춰 위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차단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공황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긴 했지만 중산층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생활을 할 만한 실질임금을 받지 못하면 그리스가 구제되고 이탈리아로 재정위기가 확산되지 않는다 해도 위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중산층이 회생하지 못하면 빈곤층은 늘어나고 소비층이 줄어 기업의 이익은 감소하며 이 결과 경제는 위축되고 정부 세수는 감소해 재정적자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적자는 쌓이는데 지원해야 할 빈곤층은 날로 증가하는 심각한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라이시는 따라서 부의 편중을 해결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제가 서서히 1930년대 대공황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공황을 기화로 독일에서 히틀러가 발호했듯 경제적 어려움과 불평등 확대로 인해 사회 불안이 고조되면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정지출 확대와 부자 증세가 해법= 라이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방법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비자가 경제에 충분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돈을 써서 인위적으로라도 수요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라이시는 혁신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해 정부가 중산층의 임금을 보존해주고 실업자가 새로 직장을 구했는데 이전 직장보다 급여가 적으면 최대 2년까지 이전 급여의 90%까지 보장해주라는 것이다. 급여가 적더라도 일단 취직해 일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공립대학은 모두 수업료를 무료로 하고 사립대학은 저리로 학자금 대출을 받도록 하되 대학생들은 졸업 뒤 일자리를 얻으면 급여의 일정 비율, 예를 들면 10%를 10년간 납부해 공립대학 재정과 학자금 대출 재원에 기여하도록 한다.

늘어나는 재정은 탄소세와 부자 증세로 충당하라고 라이시는 처방한다. 부자라고 하루에 세 끼 먹을 것을 다섯끼, 여섯끼 먹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을 소비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부가 집중되는 것은 국가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라이시는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서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이시는 최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과 유럽의 부채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부채에)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한 해법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며 긴축 정책을 비판했다.

예를 들어 디폴트 위기에 몰린 그리스에 전세계가 더 강한 긴축을 요구하고 있지만 긴축 탓에 그리스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9%에서 마이너스 5%로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시는 "재정긴축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눈 앞의 부채 때문에 어느 국가도 재정을 과감하게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경제위기가 이어지고 결국엔 정치적 불안이 촉발될 것이란 라이시의 불길한 예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