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용서와 화해의 기적을

1987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과 찬사를 받은 ‘바베트의 만찬’은 자전적 소설 ‘아웃 어브 아프리카’를 쓴 작가이며 두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이자크 데네센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덴마크 서부 해변의 벽촌에 사는 청교도 마을이 영화의 배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에 소금도 넣지 않고 먹는 종교적 우울주의자라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세속적인 모든 욕망을 절제하고 금욕주의적인 생활을 하며 음식도 간소하게 조리하여 먹을 뿐이다.


이 교파를 이끄는 목사에게는 마틴 루터의 이름에서 따온 ‘마르틴느’와 그의 제자 필리 멜랑히튼의 이름에서 온 ‘필리파’라는 두 딸이 있다. 이 자매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많은 젊은 청년들의 사랑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마을을 방문한 기병대 장교 로렌스는 우연히 마주친 목사의 딸 마르틴느에게 구애를 하지만, 흔들리던 그녀는 종교적 의무를 위해 사랑을 거절한다. 그 무렵 유명한 파리의 오페라 가수 아쉴 파팽은 건강상의 이유로 이 마을에 오게 된다.

그는 필리파의 노래를 듣고 “온 프랑스가 그대 발 밑에 엎드릴 것이오. 왕들이 줄이어 그대를 맞이할 것이고 그대는 마차에 실려 화려한 카페 앙글로(Cafe Anglais)에서 만찬을 즐길 것이요” 라며 노래를 가르친다. 그와 함께 돈지오바니의 아리아를 부르던 필리파의 마음을 눈치 챈 목사의 반대로 아쉴 파팽은 떠난다.


세월이 흘러 목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마르틴느와 필리파는 목사의 추종자를 이끌며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금욕과 절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반목과 미움과 갈등으로 질시하며 적대감을 갖고 대하며 생활한다.

어느 비가 몹시 심한 저녁에 자매의 집에 파팽의 편지를 지니고 있는 지친 모습의 바베트라는 프랑스 여성이 나타난다. 파팽은 프랑스 혁명으로 가족을 잃고 덴마크로 탈출하였고, 갈 곳이 없는 그녀를 자매의 하인으로 함께 살도록 권했다.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마르틴느와 필리파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프랑스 출신 하인과 함께 지내게 된다.

어느 날 파리에서 편지가 도착하고 바베트의 유일한 희망인 복권이 당첨되어 만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얻게 된다. 바베트는 목사의 100주년 생일기념에 프랑스식 정식 만찬을 자신이 차리겠다고 마르틴느와 필리파를 설득하고 프랑스에서 요리 재료를 구입한다.

산 거북, 메추라기, 얼음, 도자기는 물론 나무박스 안에 지푸라기로 덮힌 와인이 부엌에 놓인 것이다. 마르틴느와 필리파는 새로운 식재료를 보며 탐욕을 경계하는 그들의 신앙생활에 불길한 예감이 들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바베트가 만찬에는 젊은 날에 마르틴느를 사랑했던 로렌스 장군이 숙모와 함께 만찬에 와서 12 명의 만찬의 자리에 앉는다. 만찬이 그들에게 베풀어지는 순간에 장군이 식사를 시작하자는 말을 하자 마자 마을 사람들은 “우리 몸이 건강하게 하여 영혼을 위하여 일하게 하소서. 우리 영혼이 전진하게 하소거…” 라며 서로 손을 잡고 목사가 늘 하던 기도를 한다.

이윽고 이웃에 사는 소년이 스페인의 식전주 쉐리의 한 종류인 아몬티야도(Amontillado )를 서브하지만 숨이 막히는 테이블에 압도되어 경직되어 있을 뿐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마르틴느는 서둘러서 공작새 모양으로 접힌 냅킨을 펼치자 모두 부지런히 따라한다.

장군은 스프를 한 모금 먹고 “이럴 수가…” 하는 놀라움과 감격에 겨워 스프 그릇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마신다. 이윽고 그를 따라 마을 남자도 수줍게 손잡이를 잡고 스프를 마신다. 장군은 아몬띠야도를 마시고 정말 근사해 (Exquisite) 이라고 감탄을 한다. 미각에 탐닉하지 않는 미덕을 자랑하던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그리고 부지런히 자신의 앞에 놓은 음식을 먹으며 욕망을 자제한다.

마을 사람이 “레몬에이드 같아.” 라고 말한 생애 처음으로 샴페인과 얇은 빵위에 캐비아가 얹어진 러시아 요리 블리니 데미도프 (Blini Demidoff au Caviar)가 에피타이져로 나온다. 샴페인을 마신 장군이 놀라움에 “이것은 틀림없이 베브 끌리꼬 1860이다”고 하자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마을 사람은 “ 맞아요 틀림없이 내일 눈이 많이 올걸요” 라고 대답한다.

다음 코스로 퍼프 페이스트리에 메추리가 와인 소스와 함께 서브된다.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초특급 레드와인 끌로 드 부조 (Clos de Vougeot)가 각자의 글라스를 채운다. 장군은 손으로 메추리 고기를 떼어내어 쪽쪽 빨며 먹는다.

그리고 그는 “이 것은 젊어서 파리에서 기마대회의 승리로 먹었던 카페 앙글레의 여자 요리사가 창안한 까이유 엉 싸꼬파즈 (Caille en Sarcophage) 요리에요. 그 요리사는 요리가 사랑의 행위 (Love Affair)라고 생각하지요. 육체와 정신의 욕구가 충만한 정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라고 격찬을 하며 감격스러운 만찬의 기쁨을 표현한다. 일부 마을 사람은 정체가 드러난 욕망의 선정적 표현에 몸 둘 바를 모르지만 점차 장군의 음식찬미와 표현의 다양함에 빠져들게 된다.

장군이 한손으로 접시를 기울여서 소스를 스픈으로 떠서 먹자 하나 둘 슬그머니 포크를 내려 놓고 스픈을 든다. 마을 사람들은 눈치껏 부지런히 장군이 식사하는 방법을 따라 하며 처음 먹어보는 황홀한 음식에 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조용히 식탐을 서서히 드러내며 식탁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의 오르가즘을 느낀다.

거실에서 브랜디와 디저트를 먹을 때, 반목하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 화해의 언어를 나누며 신의 축복이 사이 사이에 넘친다. 필리파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선사하고 테이블을 치우던 소년은 글라스에 약간 남은 와인을 몰래 마신다. 그리고 장군은 마르틴느에게 영원무궁한 영혼의 사랑을 고백하며, 그녀의 손에 키스하고 떠난다.

집으로 향하던 마을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탐욕이 금기시되던 약속을 잊고 음식과 와인에 대한 찬미를 한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우물 주위에 둥글게 서서 신을 축복하며 찬송한다.

만찬이 끝나고 나서야 마르틴느와 필리파는 바베트의 만찬에 복권 당첨금을 전부 사용한 것을 알고 놀란다. 그러고도 바베트는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다시는 베풀 수 없는 바베트의 만찬은 12 사도의 최후의 만찬이요 종교와 예술의 하모니이며 신의 축복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가져온 바베트의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