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언절구 한시로 보는, 잊고 살았던 시의 향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시인의 그 유명한 시 '진달래 꽃'입니다. 아마도 쉰 살 이상의 나이를 넘긴 중년 중 많은 분들이 이 시를 포함해 다른 시 한 두 수까지도 가볍게 암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대중가요를 통해 이 시가 최근까지도 많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6-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 더 큰 이유입니다.


그 당시에는 시를 쓰거나 암송하는 것이 상당히 '고상한 것'으로 인정을 받았기에 학교 성적이나 개인적인 감수성과 상관없이, 그리고 또 많은 청년들이 연인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시적인 척' 하는 정서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청소년들 책꽂이에서는 시집 한 권을 보기가 통 어렵습니다. 한가하게 시나 감상하고 있을 시대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한시 삼백수』는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신라의 국제적 문장가 최치원부터 독립투사이자 저항시인 만해 한용운까지 기라성 같은 우리 선조들의 칠언절구 한시(漢詩)를 평역한 책입니다. '삼백'이라는 숫자는 중국의 5대 경서 중 하나로 고대의 시가를 모은 '시경'(詩經)이 삼백 여 편의 시를 모았다 해서 '시삼백'으로 불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고의 걸작들만 모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칠언절구는 '한 구(句)가 일곱 글자씩으로 된 네 줄의 한시'입니다.

최치원과 한용운 사이에 정지상, 김부식, 이규보, 이제현, 이색, 정몽주, 길재, 권근, 정도전, 황희, 이율곡, 서거정, 김시습, 김굉필, 서경덕, 조식, 허난설헌, 허균, 윤선도, 송시열, 박지원, 박제가, 김병연(김삿갓), 김옥균 등 219 명 시인들의 명시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전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저자가 각시의 원문, 3?4조의 번역, 한문 단어 설명, 시에 대한 해설을 해 놓았습니다.


제목의 숫자에 맞춰 이 시집의 300 페이지를 봤더니 마침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임제의 "대동강 아가씨 봄나들이 나섰다가 강가의 버들 보곤 애가 끊어지는구나"가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의 재치 만발 시입니다. "일봉이봉삼사봉(一峯二峯三四峯) 오봉육봉칠팔봉(五峯六峯七八峯) 수유갱작천만봉(須臾更作千萬峯) 구만장천도시봉(九萬長天都是峯)" 여름날 뭉게구름이 산봉우리처럼 여기저기 도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광경을 김삿갓이 시로 저리 읊었습니다.

◇우리 한시 삼백수=정민 평역. 김영사 펴냄. 660쪽. 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