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미국 에이전트가 찾고 있는 한국 소설

미국의 저작권 산업은 거대한 국내시장에서 소비자 선호에 맞춘 상품을 개발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저가판매 경쟁을 펼친 후,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기업이 상품수출로 이윤을 확보하는 '수익구조'를 따른다. 이것은 세계화의 지표가 되는 수출액 성장률에서 나타난다. 저작권 산업은 2008년 4.4%, 2009년 -3.3%(세계금융위기가 원인), 2010년 3.8%를 기록했다. 2010년 수출액은 화장품이 1431억 달러, 항공기(부품 포함)가 775억 달러, 농산물이 602억 달러, 의약품이 364억 달러였을 때 저작권산업은 1340억 달러였다. 저작권산업의 국내 소비와 수출의 비율은 100대 14였다.

미국의 도서 수출액은 '책·소책자·그리고 이에 비견할 인쇄물', 그 안에 포함되는 '교과서', 그리고 '과학기술전문서'란 항목으로 검색할 수 있다. 2011년 미국의 도서 수출액은 26억6287만 달러인데, 그 중 교과서가 4억8477만 달러(18.2%), 과학기술전문서가 3억 7,052만 달러(13.9%)였다. 저작권 산업 전체 수출액인 약 1340억 달러의 대부분은 소프트웨어가 차지하고 도서는 겨우 2%에 불과했다.

저작권 산업은 '책'이라는 실물이 아닌 '저작권'을 사고파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수입에는 별 관심이 없다. 매년 35만 권의 신간이 출간되고 있는 미국에서 문학 관련서는 5만 5천에서 6만 종 내외로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번역서는 약 2,100종 내외로 전체 출간종수의 0.006%에 불과하다. 이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한국 문학작품은 과연 어떤 책이어야 할까?

서울국제도서전 기간(6월 18~22일)에 열리는 국제워크숍 '한국 문학의 세계화: 번역가와 저작권 에이전트의 역할'(한국문학번역원 주관, 6월 20일 오후 2시, 코엑스 컨퍼런스 센터 327ABC호)에서 '저작권 에이전트와 번역가의 관계'에 대해 발표하는 미국 WME 에이전시 부사장 트레이시 피셔는 미리 제출한 발표문에서 잠재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있는 가장 확실한 분야는 '미스터리·스릴러·서스펜스 분야의 책'과 '서구 시장을 적시고 있는 디스토피아 장르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장르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국 대형 출판사 맥밀런이 출간해 호평을 받고 있는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원제: 'The Investigation')은 형무소라는 독특한 공간에 갇힌 자(윤동주 시인)와 가두는 자가 벌이는 처절한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이 소설을 "시와 책, 읽기의 힘을 찬양하면서 아무리 가혹한 시대라도 변화시키고 치유할 수 있다는 육감(six sense)을 선사하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이나 평단은 장르적인 속성을 지닌 소설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할 정도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문학이 진정 세계화를 추구하려면 이제 트레이시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