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결정장애 세대의 욕망 그리고 사랑

고희의 박범신은 매우 젊다. 그는 '갈망(渴望) 3부작'을 발표했다. '촐라체'는 히말라야 등정에서 조난당했다가 살아서 돌아온 두 형제를 통해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보여준다.

`대동여지도'를 작성한 고산자 김정호의 생애를 그린 `고산자'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情恨)을 보여준다. 곧은 정신, 높은 품격, 고요한 카리스마 등 고결한 이미지의 시인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 한은교를 은밀하게 갈망하는 마음을 그린 `은교'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은교'에서 노시인의 이성은 은교의 발목 인대를 한 번 접촉하자마자 죽어지내던 자신의 페니스가 불끈 일어서는 경험을 하고는 단번에 무너지고 만다. 시인이 남겨놓은 마지막 편지에서 은교는 "불멸의 내 `젊은 신부'이고, 내 영원한 '처녀'이며,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 애처롭게 발밑을 밝혀 주었던 나의 등롱 같은 누이"로 표현된다.

김별아는 최근 `조선 여성 3부작'을 완성했다. `채홍'(彩虹)은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빈이었던 순빈 봉씨의 동성애 스캔들을 다뤘다. `불의 꽃'에서는 어릴 때 한 동네에서 어울려 놀면서 친하게 사귄 사이이지만 남자어머니의 방해로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연인이 30여 년 만에 만나 격렬한 불륜의 사랑을 나눈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에서 "사랑의 상대에 있어 왕족에서부터 노비까지, 문신과 무신을 가리지 않고 신분과 지위를 무시한 평등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어우동은 "시와 음악에 흠뻑 취한 탐미주의자이자 감성의 만족과 욕망의 충족을 최선으로 하는 쾌락주의자였고, 무엇보다 인간 욕망의 비밀을 캐기에 골몰한 거침없는 탐험가"로 그려진다.

`은교'라는 소설 속에서는 `갈망'으로 끝났지만, 현실에서는 칠십이 넘은 노인이 열일곱 처녀와 실제로 사랑을 벌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50~60대 장년 남성에 끌리는 20~30대 젊은 여성을 `카레센'(枯れ專)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 흐름을 이룬다.


인간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사랑은 두 사람이 만나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었지만 자신이 바라는 게 무엇이든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끝나는 세상에서는 그런 삶이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폭탄 같은 가슴을 지닌 여자들이 전봇대 같은 성기를 지닌 남자들의 성욕을 끊임없이 해소해주는" 포르노들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기대하며 최종 결정을 한없이 미룬다. 그런 이들을 `결정장애 세대'(Generation Maybe, 올리버 예게스, 미래의창)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이비 세대'는 `사랑 혹은 섹스'가 아니라 `섹스 그리고 사랑'을 추구한다. 이제 `은교'의 근엄한 이적요 시인이 아니라 누구의 소유도 아닌 `나 자신'만을 추구한 `어우동'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인간형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