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부르는 '벙개'회식… 군대도 아닌데 '필참'

"오늘은 예외 없이 한 명도 빠지지 말고 회식에 참석하고,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은 절대 없도록…"

"또 회식이래, 어떡하지. 큰일이네…오늘 큰아이 학원에 픽업가야 하는데…근데 우리 부장님은 왜 항상 갑자기 회식을 하자고 하는 거야? 미리 일정을 얘기해주면 안되나…정말 짜증 나네…"


"그러게, 나도 시어머니가 집에 오신다고 했는데…지난주에도 갑자기 회식을 하자고 해서 사람 곤란하게 하더니…너무 한다.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요새는 군대도 이렇게는 안 할거야. 그러나 저러나 오늘도 12시 넘어야 끝날 텐데. 술도 못 마시는데 또 억지로 먹으라고 할거고…진짜 괴롭다."

갑작스런 회식으로 퇴근이 늦어지게 된 여성직원들이 개인별 사정과 음주에 대한 부담과 늦은 귀가 때문에 담당부장을 원망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CNN에서는 한국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잘 할 수 있는 10가지(10 things South Korea does better than anywhere else)를 소개했다. 그 중 직장인의 음주문화가 4위로 선정됐다. CNN은 한국인들은 업무가 끝나면 바로 퇴근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면서 실적에 대한 축하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푼다고 전했다. 이어 여러 기업들이 음주문화를 고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직장상사들이 2차 3차로 이어지는 폭탄주 문화를 즐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비정상회담'이란 다국적 젊은이들의 토크쇼에서도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한국문화로 음주 회식문화를 꼽은 바 있다.

특히 대부분의 직장여성들은 이러한 우리나라의 술자리 회식 문화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여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 위주의 술자리'가 직장회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회식문화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식이 싫은 이유는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38.5%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예고 없이 진행될 때가 많아서(23.1%) 회식 때도 계속되는 업무 이야기에 지쳐서(15.4%) 등이 뒤를 이었다.

회식도 일의 연장선이라며 빠지고 싶어도 억지로 가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상사가 권하는 술은 무조건 마셔야 예의인 직장의 술 문화. 의무적으로 무조건 자리를 채워야 하고, 매우 그럴듯한 이유가 없으면 빠지기 어렵고, 빠지면 눈총 받고 업무상이나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참석은 하지만, 알콜 분해효소가 거의 없는 한국여성들은 이러한 회식문화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직장에서의 회식은 명목상으로는 친목도모나 사기진작, 스트레스해소 등 상당히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과도한 음주나 늦은 귀가로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 불미스런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여성 10명 중 6명은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여성민우회에서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왜곡된 직장의 회식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10가지 팁을 제시했다.

1. 회식날짜와 장소는 모두의 일정과 의견을 고려해 함께 정한다.
2. 자율적인 회식 참여를 보장하고, 억지로 술을 권하지도 먹지도 않는다.
3. 술 따르기·블루스 강요, 끼워 앉히기 등 성희롱을 하지 않는다.
4. 음담패설을 하지도, 듣지도 않는다.
5. 고기 굽기, 수저 놓기, 안주 찢기 등 회식 자리 도움 일은 모두가 함께 한다.
6.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단란주점, 룸살롱 등 퇴폐 향락업소에 가지 않는다.
7. 회식 자리 성희롱, 폭언, 폭행 등을 문제 제기하는 동료의 든든한 지지자가 된다. 8.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저해하는 잦은 장시간의 회식을 삼간다.
9. '여자니까''남자니까''어리니까' 등의 권위적이고 성차별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 10. 평등한 관계에서 소통하며 팀워크를 다지는 회식 문화를 만들어간다.

한편 서양에서는 한국과 같이 업무시간 종료 이후에 자리를 옮겨서 집단적으로 음주를 하고 음식을 먹는 회식 문화는 없으며 점심을 같이 먹거나 근무 시간 중이나 아니면 정규 근무 시간을 약간 앞당겨 종료한 후에 자리 이동 없이 그냥 근무장소에서 간단한 다과 정도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경우가 보통이다. 또한 참석 여부도 한국과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다.

수많은 연구에서 성별이해지능(Gender Intelligence) 전문가들은 남녀의 다름이 시너지를 낼 때 조직의 성과가 극대화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회식문화도 이제는 남성중심의 음주 일변도에서 벗어나 남녀의 시너지를 도출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직장상사들은 오늘도 부하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조직의 단결을 위해, 팀의 화합을 위해 밤늦게 까지 '위하여'를 외친다.

우리나라의 부하직원들은 오늘도 괴롭다. 특히, 여성들은 더욱 괴롭다. '위하여'가 거듭될수록 그 고통은 심해진다. 하지만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게 조직생활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