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쉽게 임금은 적게?' 정부안에 노사정 앞길 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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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권영순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고 있다. © News1

정부가 정규직 근로계약 해지와 임금조정 등 친기업적인 노동 유연화 방안을 비정규직 대책에 포함시키면서 노·정 갈등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9일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성과가 낮은 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는 가이드라인을 신설하고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체계로 개편하는 등의 노동시장 구조개선 대책이 들어있다.

노동부는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성과가 낮은 정규직원이 직업훈련이나 전환배치, 직급 등 근로조건을 조정하고도 사회통념상 고용관계 유지가 힘들면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을 내놓았다.

경총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해 시장 상황을 반영한 합리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한 토양을 만들지 않고서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래 일자리 창출 자체를 기대할 수도 없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정규직 과보호 해소'와 '고용 유연화'로 비정규직 종합대책 방향을 흐리게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규-비정규직의 과도한 격차를 완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서 고용의 질을 하향평준화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한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차별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정규직의 해고요건을 완화해야 600만 비정규직이 구제받을 수 있다는 논리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노동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로 기업의 부담을 줄여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끌어내겠다는 정부 의도로 읽힌다"며 "정규직을 흔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정부안이 발표되자마자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노사정위원회 불참도 불사할 것임을 경고했고, 민주노총 역시 "비정규직 양산 대책"이라며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안은 통상해고 사유에 업무성과에 따른 징계·해고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며 "사측이 자의적으로 퇴출 규모·대상을 미리 정해놓고 압력을 행사해 자르는 불법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또 연공형 임금체계를 임금격차 확대, 정규직 신규채용 회피, 비정규·간접고용 확산 등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하고 직무·성과 체제로 개편을 유도하는 방침이 제시되면서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비정규직 대책이 해고 요건 완화, 임금 개편으로 이어지면서 노동계는 반발하고 재계는 표정관리를 하는 모양새다. 보통 정부 대책이 나온 뒤에는 각계의 성명이 나오지만 재계는 임금개편 부분에 대해선 특별한 논평 없이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경직성 조정과 고통분담 선행"만을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기업의 경영상태에 따른 임금의 하향조정 여지를 대폭 확대시켜 주는 대신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생활 유지를 위한 적정 임금 보장에 대한 정책은 없다"며 "이는 기업의 자의적인 임금 하향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차별받는 비정규직 사원 장그래가 주인공이 된 드라마 '미생'이 최근 인기를 끌면서 '장그래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으나 정부안을 두고는 노·정 간 간극만 더욱 벌어지는 양상이다.

비정규직 남용 방지와 차별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던 정부의 대책이 애초 목적과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안을 토대로 내년 3월까지 노사정 논의를 거칠 예정이나 기한 내 타결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노동학계 한 인사는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직무 성과급 확대 등의 정부안은 노동자의 생존 근거인 일자리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벗어났다"며 "정부가 균형을 잃으면 향후 진행될 노사정 논의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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