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뒷골목에서 즐기는 '현지의 맛'

아나톨리아 반도 페르게에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행복한 여행의 조건을 말하라면 나는 먼저 건강을 꼽는다. 평소에 “여행은 건강이 주는 선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건강을 중시한다. 몸이 아프면 구경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법이다. 병이 나서 여행을 중동무이하고 돌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건강은 역시 여행의 필수조건이다.

또 하나 빼놓은 수 없는 건 ‘식성‘이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곳 음식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여행자로서 최고의 조건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음식을 즐길 때 여행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지중해 인근의 고대도시 페르게에 갔을 때의 일이다. 로마 유적지를 돌아보던 중 우연히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45일 일정으로 여행 중이란다.


대화는 대부분 남편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부인은 자외선차단제를 두텁게 바르고 그늘 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만이 그득했다. 남편이 유적들 사이로 걸어 들어간 뒤 그녀와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남편은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배낭 여행가였고 부인은 남편의 여행에 처음 따라나선 터였다. 편안하고 화려한 여행을 꿈꿔온 그녀에게 오지를 찾아다니는 여정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말끝마다 “이럴 줄은 몰랐다”를 주문처럼 외웠다.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 아래 완전 녹초가 돼 있었다.

무엇보다 음식이 문제였다. 현지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여행 내내 과일만 먹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과일이 싼 지역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여행이고 뭐고 빨리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나는 게 그녀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얼굴에는 김치, 된장찌개, 비빔밥… 그리운 음식의 이름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중국 도시의 밤 풍경/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친구와 중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소위 말하는 ‘비위가 약한’ 친구였다. 현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가 문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이 친구는 거부반응이 유달리 심했다. 종내는 맥주에서도 향신료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렸다. 증류주는 몰라도 맥주에는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정도면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중국이나 동남아 쪽에 갈 때면 뒷골목 탐색에 나서고는 한다. 누구는 위험하다고 한사코 말리지만,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직 험한 일을 당한 적은 없다. 어느 나라든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화려한 큰길보다는 뒷골목으로 가야 한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다.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호텔에서 내놓는 ‘세계 공통’의 음식으로는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문화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홍콩에 가면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관광객이 아닌 서민들이 먹는 딤섬을 사먹는다. 가격도 천양지차여서 대형 음식점보다 몇 배나 싸다. 미각이 둔한 탓인지 맛이 별로 다른 것 같지도 않았다.

베트남에 가면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주로 노동자들이 식사를 하는 동네 쌀국수집을 찾아간다. 일을 하다 오는 바람에 땀 냄새 물씬 나는 사람들 틈에 섞여 국수 한 그릇 비우고 나면 그들과 피라도 나눈 듯 가까워진다. 순박한 눈동자 어디에도 위험 요소는 없다.

중국에서는 밤이 되면 여기저기 쏘아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양꼬치를 즐긴다. 동행한 사람들이 질색할 때도 있다. 위생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배탈이 날거라는 염려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값이 싼 백주(白酒)까지 곁들여 푸짐하게 먹고는 한다. 물론 배탈이 난 적은 없다. 내 체질이 특별한 건지, 조리가 생각보다 위생적인 건지 알 방법은 없다.

여행자들에게 나처럼 뒷골목 탐색을 해보라거나 아무 음식이든 먹어보라고 권할 생각은 없다. 여행 중에 장염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현지인들 속으로 들어가 보라는 권유는 하고 싶다. 여행은 낯선 사람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니까. 내가 낯선 나라의 뒷골목이나 시장을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