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군 복무자 상이등급 멋대로 낮췄다' 손해배상까지

정부가 군 복무 중 사고로 '작열통(복합부위통증증후군, CRPS)'을 얻게 된 남성의 상이등급을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낮췄다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주게 됐다. 정부는 심지어 현행법상 작열통을 이유로 배정할 수 없는 상이등급으로까지 이 남성의 등급을 낮췄던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10-3민사부(부장검사 정원)는 군 복무 중 부상으로 상이군인이 된 A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최근 "정부가 A씨에게 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판결 기초사실을 종합하면, A씨는 군 복무 중이던 지난 2005년 연대 전술훈련을 위해 창고 선반에서 훈련물자를 꺼내던 도중 3m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이 사고로 이른바 '작열통'으로 불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앓게 됐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란 외상으로 손상을 입은 신체부위에 극심한 통증이 만성적으로 나타나고, 나은 후에도 해당 부위에 원인불명의 강한 통증이 이유없이 느껴지는 희귀 신경병이다. 발병 원인과 치료법이 알려진 바가 없다. 배우 신동욱씨가 이 병을 앓았다.

보훈청은 2008년 A씨에게 상이등급 5급(신경계통의 기능장애로 취업상 상당한 제한을 받는 사람) 판정을 했다. 상이등급이란 전투 또는 공무수행 중에 상이를 입고 전·퇴역한 군인 등에게 일상생활 활동기능의 장애 정도를 신체의 각 부위별로 일정한 기준하에 분류한 등급이다. 등급은 상이등급구분 신체검사를 통해 측정된다. 2011년 A씨는 통증 부위가 왼팔로 확산됐음을 이유로 등급상 '추가 상이'를 인정해달라고 신청했고, 소송 끝에 2013년 추가상이 요건을 인정받았다.

보훈청은 2013년 12월 A씨에 대해 재분류를 위한 상이등급구분 신체검사를 실시했지만 상이등급에 변동이 없다고 통보했다. A씨는 곧바로 다시 판정해달라는 신청을 냈다. 그런데 보훈청은 A씨에 대한 재판정 신체검사 후 2015년 A씨의 상이등급을 오히려 5급에서 7급(신경계통 기능장애로 취업상 경도의 제한을 받는 사람)로 낮추는 상이등급 하향 처분을 했다. 상이등급 5급의 경우 150만원 내외의 월 보상금을, 7급은 40여만원 내외의 보상금을 받는다.


정부가 A씨의 등급을 낮춘 이유는 체열검사, 단순촬영, 핵의학검사에서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였다. 정부는 A씨가 통증으로 근전도 및 신경전도 검사를 실시하지 못했음에도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채 등급을 하향했다. 특히 현행법상 작열통을 이유로 부여할 수 있는 상이등급은 6급까지인데도, 보훈청은 A씨에게 부여할 수가 없는 상이등급 7급까지 그의 등급을 낮췄다.

A씨는 보훈청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행정법원의 조정에 따라 서울지방보훈청장은 A씨의 상이등급을 다시 5급으로 변경했다. A씨는 이후 부당한 처분으로 인한 소송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피해 등 위자료, 보상차액, 보상차액에 대한 대출이자 등 2200만원을 지급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법원은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A씨는 이미 작열통으로 상이등급 5급을 받은 상태에서 추가 상이가 인정돼 상이등급 재판정을 위해 신체검사를 신청한 사람이므로, 기존 상이등급 및 작열통의 특성 등을 고려해 신중한 신체검사 및 판정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훈청은 A씨 통증이 매우 심한 상태임을 확인하고서도 단지 체열검사, 단순촬영, 핵의학검사에서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추가 검사 없이 원고 상이등급을 2단계 하향했다. 이는 기존 상이등급 부여과정 및 작열통에 대한 검사상 특이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어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 시행규칙 별표에 따르면 작열통의 경우 상이등급 5, 6급을 인정할 수 있을 뿐 법령상 7급은 작열통에 대해 부여할 수 있는 상이등급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보훈청의 상이등급 하향 조치는 등급판정에 대한 관계법규를 알지 못하거나 필요지식을 갖추지 못한 과실로 인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는 법령에 대한 해석이 어렵고 학설이나 판례가 없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공무원이 관계법규를 알지 못하거나 필요한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법규해석을 그르쳐 처분을 한 경우 '과실'이 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정부는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위법한 처분을 바로잡기 위한 소송과정에서 A씨가 받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3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