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 '전기차 배터리'로 뭉치면 뭘 얻을 수 있나?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내 각계대표 및 특별초청 인사들과의 신년 합동 인사회에 참석해 김영주 대한무역협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처음 있는 일인 만큼 무게감이 확실히 다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13일 '배터리 회동'을 한 것을 두고 재계에서 나온 반응이다. 두 인물이 업무 협력을 전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다. 재계 1·2위 수장이 머리를 맞댄 만큼 앞으로 배터리 산업 전반의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오늘 첫 만남의 화두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개발이다. 그 중에서도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해 열과 외부 충격에 대한 저항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전고체 배터리' 기술이다. 이 기술은 특히 안전성 확보가 숙명인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판도를 바꿀 미래 핵심기술로 통한다.

'포스트 반도체' 선점

이와 관련 재계는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이 전기차 배터리를 '포스트 반도체'로 낙점하고, 세계 시장 선도를 위해 실제 행동에 나섰다는 신호탄이라고 본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과 업계에 따르면 2017년 330억달러(약 37조원) 규모인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연간 25%씩 고속 성장해 2025년에는 1600억달러(182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 시장을 잡기 위해 우선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이 따라잡기 힘든 기술 우위를 확보하자는 게 재계 1·2위 수장들이 만난 이유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본격 성장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은 일단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 섰다.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점유율 1위로 올라선 LG화학을 비롯해 삼성SDI(4위), SK이노베이션(7위) 등 배터리 3사 모두 '글로벌 10위' 안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같은 우위가 유지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과 기술 부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의 경우 토요타가 2022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자체 내수시장이 큰 중국은 이미 기술력에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 배터리 산업은 자칫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형국에 직면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기술 초격차가 절실하다는 데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모두 공감했다고 보면 된다"며 "재계 전반의 공조가 3세 경영으로 넘어와서도 탄탄히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배터리 기술 도약 우군 확보

양대 총수의 이번 만남으로 배터리 계열사인 삼성SDI를 가진 삼성으로서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게 됐다.

삼성SDI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수조원 단위를 투자하며 글로벌 생산기지를 늘려갈 때도 큰 움직임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삼성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뜻이 없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삼성은 공격적으로 생산능력을 늘리기보다는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전고체 배터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지난 3월 단 한번 충전으로도 800km를 주행하고, 1000회 이상 재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연구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아울려 내년에는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가 현행 전기차보다 20% 높은 전기차 배터리 양산에도 착수할 방침이다. 이런 삼성SDI가 현대차그룹을 우군으로 확보하면 이 같은 기술을 통한 세계시장 공략 의지를 더 명확히 할 수 있다.

현대차, 배터리 수급 안정화

반면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안정적 공급망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전까지 현대차는 LG화학의 배터리만 고집했지만, 최근 차세대 전기차 모델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했다. 이는 배터리 공급망을 다각화해 리스크를 줄이고, 수급 안정성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삼성SDI까지 가세한다면 현대차 입장에선 차세대 배터리 확보 루트를 확실하게 갖추는 셈이다.

공급망 다각화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필수다. 현대차그룹은 특히 2025년까지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예정인데, 이 중 절반이 넘는 23종을 순수 전기차로 채운다는 청사진이다.

기술개발 단계부터 삼성과 공조할 경우 향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의 완성도와 품질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현대차는 완성차 업체지만 배터리 기술 특허만큼은 관련 업계와 공동 개발을 통해 특허를 보유할 만큼 관련 기술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8년에는 미국 전고체 배터리 개발 업체인 아이오닉 머티리얼스와 솔리드파워에 집중 투자를 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차 양사가 자동차용 반도체 등 전장 사업은 물론 모빌리티 사업 전반에서 손을 잡고 갈 수 있다"며 "그 출발점은 바로 전고체 배터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