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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기업 엄벌화'로만 치닫는 안전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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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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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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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기업 엄벌화'로만 치닫는 안전입법
최근 우리 사회는 안전 입법에서 가히 ‘과잉형벌 의존 증후군’이라고 부를 만하다. 사고 예방의 실효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피해 감정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서만 입법근거를 찾는 ‘엄벌화 입법’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엄벌화 입법의 범죄 억지 및 예방 효과에 대해 검증하려거나, 응보감정을 이성적으로 거르려는 과정 없이 무조건 엄벌만이 곧 정의인양 생각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의 책임은 묻지 않고, 사고발생 기업에 대해서만 엄벌주의로 대응한다. 물론 가해자에게 책임을 돌려 국가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들끓는 여론을 가라앉히는데 엄벌주의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바로 엄벌주의인 이유다.

엄벌주의 접근은 안전 문제를 개별 기업만의 문제로 여기다 보니, 여기에서 등장하는 인간관계는 '가해자' 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단순화된다. 이 접근은 사고라는 결과에 책임을 묻는데 집중하고, 사고가 발생하게 된 사회구조적 요인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가해자인 개별기업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안전 문제와 인간이 갖는 사회성은 무시된다. 하지만 사회성을 무시하고 가해자를 희생양 삼는데 급급한 대응은 그럴듯한 정치 슬로건은 될 수 있어도 사고 예방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엄벌화 입법은 사고 발생 기업에 대해 도산할 정도의 치명적 제재를 가해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사고 발생 기업이라고 해서 사회에서 떼 내어 도태시켜야 한다는 이런 발상은 근대 형법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근대 형법은 "범죄는 행위"라는 생각 아래 '범죄'는 사회의 적이지만 '범죄자'는 사회의 적은 아니라는 원리에 기초한다.

처벌 수준은 사회적 규범의식을 도외시할 수 없지만 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 감성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범죄 예방의 실효성을 따져보지 않고 엄벌화로만 치닫는 것은 국민의 소박한 보복감정에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며,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상징 입법'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를 감소시키려면 엄벌화 외의 요인을 포괄하는 종합적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 이것이 충실하지 않으면 아무리 무관용으로 처벌을 강화해도 법 위반은 줄어들지 않는다.

안전 입법에서도 처벌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예방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대중 영합적인 엄벌화 입법이 돼선 안 된다. 권력은 남용되기 쉽다는 교훈은 엄벌화 입법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한 형벌은 입법 근거가 된 규제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사고 예방의 실효성도 담보하지 못한다.

그런데 안전입법에서는 죄형법정주의가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죄형법정주의는 민주주의의 산물이자 입법의 효과성을 담보하는 장치이다. 죄형법정주의가 안전 입법에 대한 비판의 기준으로 재삼 강조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준법 의지가 있는 기업이라면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비현실적이고, 불명확한 안전기준을 개선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들도 어렵지 않게 사고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고 예방 기법을 널리 개발해 보급하고 유도하는 등 사고 예방 기반을 정비·확충하는 것이 역점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사고 예방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소홀히 한 채 안전 문제를 단속과 처벌 위주로 접근하고, 사고발생 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현대 국가로서의 면모가 아니라 경찰 국가에서나 보이는 현상이다.

처벌은 목적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기업을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처벌만이 아니라 기업이 안전 입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인프라를 조성하는 정책적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한국의 사고 예방 행정에서 특히 부족한 점이 이러한 포용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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