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중, 한계를 허물어온 다장르의 배우

'그리드' 김아중, 사진제공=디즈니+

디즈니+ '그리드'(극본 이수연, 연출 리건)에서 강력계 형사 정새벽을 연기하는 김아중은 살벌한 살인 사건 현장에 태연한 얼굴로 처음 등장한다. 난도질당한 시체 옆에 살인 도구로 쓰인 피묻은 가위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지문 감식을 하고, 위태로운 줄타기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몸사리지 않고 범인 검거에 나선다. 강력계의 유일한 여자 형사이지만, 남자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발맞춤으로 김아중은 '여형사'가 아닌 '형사'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매우 의협심 넘치며 매사 열정으로 눈을 번뜩이는 정새벽이라는 인물은 장르물의 긴박함을 고스란히 운반한다. 이런 새벽을 호감형 캐릭터로 느끼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역할의 한계를 허물어온 김아중의 힘이 크다.


2004년 모 핸드폰 광고에서 멋진 춤과 노래 실력으로 단숨에 대중의 눈에 든 김아중은 한눈에 봐도 끼와 포텐셜이 가득했던 재원이었다. CF 한편으로 당시 차기 행보의 줄계약이 이어졌을 정도로, 모두를 주목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연기자로서는 '해신'에서 카리스마와 귀여움을 오가는 호위무사로 눈도장을 찍으며 대중의 호감을 빠르게 샀다. 정식 데뷔 후 KBS1 일일드라마 '별난여자 별난남자'(2005)로 한 작품의 타이틀롤이 되기까지 그가 걸린 시간은 2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듬해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로 미모와 연기 포텐셜을 제대로 터트리며 흥행력까지 동반한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된다. 이후로 그는 주연배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절세미인을 연기해도 수긍이 갈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지녔고, 청바지 모델을 했을 정도로 탁월한 몸매까지 지닌, 스타의 전제조건을 두루 갖춘 그였다. 김아중은 그렇게 2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동안 우리 곁에 스타로 존재했다. 그리고 이 배우의 변치 않는 인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예쁜 역할에만 안주하지 않던 도전정신이다.

김아중, 사진제공=디즈니+

'미녀는 괴로워' 이후 비슷한 역할로만 머물렀을 것 같은 그의 필모그래피는 사실 그렇지가 않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는 예쁘면서 착하기만 했던 역할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배우로서 성장을 거듭했다. 포기라곤 모르는 무한 긍정주의 국과수 신입 법의관 고다경을 연기했던 드라마 '싸인'(2011)에서 밝은 외면 뒤로 억울한 사고로 동생을 잃은 슬픈 사연을 지닌 복잡한 인물을 연기했다. 그리고선 특유의 섬세한 연기력으로 두 모습 사이의 경계가 튀거나 흐리지 않게 캐릭터를 그려냈다. 영화 '나의 PS 파트너'(2012)에선 보다 과감하게 섹슈얼한 도전에 나섰다. 능청맞음과 여유로움 사이의 유연한 연기로 관객의 눈길을 붙들었다.



김아중은 '나의 PS 파트너' 개봉 당시 가진 인터뷰에서 "실제의 저와는 다른 역할이었다. 전 윤정이라는 캐릭터가 좀 더 주체적인 여자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윤정을 완성했지만, 다음을 내다보며 캐릭터를 확장해왔다. 이듬해 출연한 영화 '캐치미'(2013)의 사기꾼 진숙은 그의 바람을 고스란히 갖췄던 주체성이 짙은 캐릭터였다. 그는 잘 갖춘 외형을 활용하면서도, 그 속에서 전에 보여줬던 모습보다 더 숙련된 결을 보여주며 성장의 가지로 삼아왔다. '원티드'(2016)의 혜인, '명불허전'(2017)의 연경, '나쁜 녀석들-더 무비'(2019)의 노순까지. 역할을 거듭할수록 연기에 힘이 붙었으나, 이미지의 마모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김아중이 보여주는 '그리드'의 정새벽은, 자신의 서있는 영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하나의 장르처럼 보인다. 다이내믹한 액팅과 은근한 웃음을 부르는 재치있는 입담은 덤이다. 그 속에서 김아중은 성공적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얼굴을 확장한다. 극중에서 가장 많은 인물들을 상대하면서, 상황과 사람에 따라 말의 온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지금 김아중은 드라마를 가장 무게감 있게 끌어가는 주인공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그렇게 그는 명료한 답을 남긴다. 왜 김아중이어야 하는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