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식용유 잘 팔리는 이유…"지속가능한 항공연료 시대"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과제가 되면서 탄소배출이 많은 대표업종인 항공사들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바이오 항공유 도입을 의무화하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원료로 쓰이는 폐식용유 등의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정유화학업계도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만큼 관련 공급망과 제도 구축이 시급하단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는 탄소배출 감축 계획안인 '핏 포 55(Fit for 55)'에 따라 EU에서 급유되는 모든 항공유에 일정 비율 이상의 '지속가능 항공유(SAFs)'가 포함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오는 2025년부터 EU에서 이륙하는 모든 비행기는 SAF 사용이 의무다.


SAF는 폐식용유, 동식물성 기름, 사탕수수 등 바이오 대체 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항공유다.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을 80%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도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의 65%를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SAF)를 활용해 감축하기로 의결했다.

특히 UN 산하 국제민항기구(ICAO)는 오는 2027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탄소감축상쇄제도를 의무화하기 때문에 바이오 항공유 사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ICAO의 바이오 항공유 보급 목표는 2025년 2%, 2040년 32%, 2050년 50%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바이오 항공유 의무 도입 비율을 정했다. 프랑스와 스웨덴은 올해 각각 1.0%, 1.7%의 바이오 항공유 혼합비율을 의무화했다. 노르웨이도 바이오 항공유 0.5%를 의무화했다.

현재 전 세계 바이오항공유 사용량은 연간 2~3만 톤으로 전체 항공유 중 0.1%에 불과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는 2040년 연간 6000만 톤까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40년간 총 항공유 소비 중 20%에 달하는 수치다. 영국항공, 카타르항공 등 바이오항공유 설비 투자에 직접 나선 항공사들도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도 바이오 항공유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3월 바이오 항공유 사업을 포함한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신사업으로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올해 연산 13만톤 규모 화이트 바이오 공장을 추진한다. 폐식용유, 팜폐유 등으로 연료를 만드는 친환경 신기술 공정을 도입한 공장이다. 내년부터 2025년까지는 바이오 항공유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현지에 직접 바이오 항공유 제조공장 합작사를 추진한다.

지난해 6월엔 대한항공과 '바이오항공유 제조 및 사용 기반 조성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바이오 항공유 인프라 구축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비상장 (32,300원 0.00%) 관계자는 "바이오디젤 등을 생산하는 화이트 바이오 공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상업 가동이 목표"라며 "현재는 EU 중심으로 바이오 항공유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비해서 바이오 항공유 로드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다른 정유사들도 장기적으로 바이오 항공유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바이오 항공유 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LG화학도 바이오연료 기업인 단석산업과 2024년까지 바이오 오일 공장을 완공하기로 했다. LG화학이 생산하는 HVO(수소화식물성오일)는 폐식용유, 팜부산물 등으로 만드는데 차량용 뿐만 아니라 항공유 및 석유화학 원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해외 정유사들은 이미 시장에 진출한 만큼 국내 정유사들도 시장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핀란드 국영 정유사 네스테오일은 바이오 디젤, 바이오 항공유 등 바이오에너지 부문에서만 연간 영업이익의 80%에 가까운 2조원 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다. 네스테오일은 내년 말까지 연간 150만 톤의 바이오 항공유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랑스 토탈도 바이오 항공유를 생산 중이다.

아울러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EU의 경우 바이오 항공유의 원료인 폐식용유 공급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주로 아시아 등지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지난달 폐식용유 공급망 관리 강화 목적의 인증제도 표준 개정안을 발표하는 등 제도 마련에 분주하다. 내년 1월엔 바이오 연료 추적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폐식용유는 대부분 하수구로 흘러들어가거나 휴지 등에 흡수돼 폐기물로 버려지기 때문에 폐식용유 수거 체계 구축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국내 바이오디젤 기업인 단석산업 등은 식당 등에서 사용된 폐식용유를 자체적으로 수거해 바이오디젤 원료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바이오 항공유 시대가 열리는 건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원가 절감을 위해 공급망을 어떻게 확보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수급 체계를 갖춘 중소기업 등을 인수하거나 장기 계약을 맺는 방안 등 여러 가지 원료 수급 방안을 열어놓고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