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허가 곧 경쟁력…소송에 포상까지, 기업·관이 뭉쳤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사진 = 이주희 인턴 디자인기자

"세계적으로 반도체 부문의 전략자산화가 가속화되면서 특허 기술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국가 차원의 과제가 됐습니다."

10일 반도체 업계의 한 인사는 최근 주요 기업들 사이 '특허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반도체가 핵심 안보 자산으로 부상하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특허 기술을 확보해 격차를 벌리겠다는 구상이다. 늘어나고 있는 기술 유출에 적극 대비하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정부도 반도체 특허기술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등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날 업계에 따르면 올해까지 해외로 유출된 국가핵심기술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반도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의원이 산업부와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해외로 유출되거나 적발된 국가핵심기술 36건 중 가장 많은 8건(22%)이 반도체 분야였다.국가핵심기술은 해외 수출이나 인수 합병시 정부 신고·허가를 거쳐야 하는 중대 기술을 뜻한다.

업계는 반도체 핵심기술의 유출이 잇따르는 것을 두고 특허기술 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특허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만 산업기술 보호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판결이 상대적으로 관대하고, 특허 소유자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아 기술 유출이 쉽다는 지적이다. 지난달에도 삼성전자가 매년 3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개발한 반도체 관련 첨단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전·현직 삼성그룹 임직원들이 기소됐다.

기업은 조기 대응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사내 구성원들의 특허 의욕 고취에 적극적이다. 지난 8일에는 낸드플래시, 솔루션, 패키지 등 다양한 반도체 관련 기술 분야에서 기술혁신에 기여한 특허를 발명한 구성원 19명에게 상패와 총상금 2억 1500만원을 수여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SK하이닉스 학술대회에서도 217건이 특허로 연결됐고, 이 중 41%인 90건이 전략특허로 선정됐다.

삼성전자는 압도적인 특허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낸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까지 보유 특허 1900여건을 협력사들에게 무상으로 양도했다. 유럽 전체에서 반도체 특허 출원 비중 1위(13%)를 차지할 정도로 탄탄한 특허 기술 보장이 뒷받침됐다. 3%대인 인텔(2위)·TSMC(3위)와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소송을 통한 방어권 행사에도 적극 나선다. 규모가 큰 업체들과의 특허소송에서 잇달아 승전보를 울리고 있는 서울반도체는 자사의 '와이캅'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 버지니아와 독일 뒤셀도로프에서 침해 기업의 판매금지를 요청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와이캅' 기술은 와이어와 패키징 없이도 바로 PCB에 실장해 초소형 LED 제작이 가능한 반도체 기술이다.

정부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특허청은 이달부터 1년간 국내에서 개발된 반도체 기술 분야 특허출원을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평균 반도체 심사에 12.7개월이 걸리는 것보다 10개월 빠르게 특허를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반도체 등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강화를 위해 '후속 진단 특허기반 연구개발 전략'(IP-R&D)을 도입한다.

업계 관계자는 "첨단기술이 많고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관계자 단 1명만 변심하더라도 핵심기술이 유출될 수 있어 특허기술은 확보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라며 "기술경쟁력을 지속 확보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협동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특허 확보를 위한 대책을 세울 필요성이 절실하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