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스토킹처벌법 시행 1년…제2의 전주환 못 막는다

#지난 9월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전주환(31)은 스토킹하던 여성 역무원 A씨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A씨는 앞서 전주환을 스토킹처벌법 위반, 성폭력 처벌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다. 전주환은 A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법정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태현(26)은 지난해 3월23일 서울 노원구에서 온라인게임에서 알게 된 B씨와 그의 어머니, 동생을 살해했다. 김태현은 B씨가 자신의 연락을 거부하자 B씨의 집을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대법원은 지난 4월 김태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 1년을 넘겼지만 신당역 살인사건이라는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스토킹 가해자를 격리해 추가 가해를 막는 분리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또 스토킹이 여전히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는 점은 추가 가해 뿐 아니라 범죄의 심각성을 낮출 수 있어 한계로 지적된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인 전주환(31)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2.09.21. (공동취재사진) 2022.09.21.

구속된 스토킹 가해자 4.8%…스토킹 중범죄로 인식돼야 15일 법제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과거 경범죄로 분류되던 스토킹 행위를 범죄 행위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게 됐다. 또 스토킹처벌법은 잠정조치 등 피의자와의 분리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도 담는다. 이 법에 따르면 스토킹 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들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말한다.

스토킹처벌법이 처음 발의된 건 지난 1999년 제15대 국회였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토킹은 사적 애정표현이나 구애와 구분하기 어려워 독립 법률 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토킹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지난해 3월24일 국회는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통과 약 7개월 뒤인 같은 해 10월 21일 시행됐다.


법 시행 이후 스토킹 피해 신고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지난 9월 30일까지 약 1년간 스토킹 신고 건수는 2만9156건이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5000건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6배 증가했다.



신고는 늘었지만 분리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올해 6월까지 검찰이 처분한 스토킹 사건 3182건 중 피의자가 구속된 건 154건으로 4.8%에 불과하다. 전주환 역시 불구속 상태로 스토킹처벌법 위반,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받던 중 피해자를 살해했다.

구속 전 단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잠정조치가 있지만 검찰과 법원 단계에서 기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토킹 범죄 등의 잠정조치는 사건의 경중에 따라 △1호 서면 경고 △2호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주거지 등 100ｍ 이내 접근 금지 △3호 전기통신 이용 접근 금지 △4호 최대 1개월간 가해자를 유치장에 유치 또는 구치소에 수감 등으로 나뉜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경찰은 6629건의 잠정조치를 신청했다. 이중 778건(11.7%)은 검찰이, 315건(4.8%)은 법원이 각각 기각해 최종 인용된 건수는 5111건(77.1%)이다.


스토킹 범죄로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이 낮고 형량도 중하지 않은 현재로선 법원이 가해자의 인신을 제한하는 구속과 잠정조치를 내리기 어렵다. 법 시행 이후 스토킹 범죄로 징역형이 내려진 경우는 27%(63건)에 불과하며 평균 형량은 1년1개월 가량에 그쳤다. 벌금형에 그친 경우는 16%(38건),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우는 31%(73건)이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잠정조치의 경우 최대 1개월, 구속영장은 그 이상 피의자를 붙잡아두는데 정작 집행유예가 나와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경우 판사가 잠정조치나 구속영장을 인용하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여전히 반의사불벌죄…폭행·협박과 스토킹 범죄 같나?현행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즉, 반의사불벌죄라는 점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와 국회는 전주환 사건을 계기로 반의사 불벌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입법 당시에도 추가 가해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입법 당시 법무부는 반의사 불벌 조항을 담은 안을 마련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해당 조항이 피해자를 위축시키거나 가해자의 추가 가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 안대로 법안이 통과됐고 법 시행 이후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혀 기소되지 않은 비율은 30%가량으로 알려졌다.

반의사불벌죄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에 적용되는 만큼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과는 괴리된다는 지적이다. 반의사불벌죄는 경미한 범죄에서는 당사자 사이 갈등 해결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 생겼다. 폭행, 존속폭행, 협박, 과실치상, 명예훼손 등의 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 표시를 철회했을 때는 처벌할 수 없다.

법무부는 전주환 사건 이후부터 반의사 불벌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입법 추진중이다. 법무부는 지난 10월 이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전날인 14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났다. 개정안은 현재 법제처 심사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개정안 발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승 연구위원은 "반의사 불벌 조항이라는 건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어서 폐지되는 게 맞다고 본다"며 "반의사 불벌이 적용되는 범죄는 폭행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인데 스토킹도 그런 범죄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고 했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노원구 세 모녀’를 잔혹하게 연쇄 살해한 피의자 김태현(25)이 9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23일 근처 슈퍼에서 흉기를 훔친 뒤 모녀 관계인 피해자 3명의 주거지에 침입해 이들을 차례대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4차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김태현에게 살인죄 외에 절도, 주거침입, 경범죄처벌법위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 등 4개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2021.4.9/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