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MS에 테슬라까지…이재용 '마라톤 회동'에 삼성 미래 달렸다

/사진 = 김다나 디자인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간의 미국 출장을 마쳤다. 201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역대 최장 기간 해외 출장이다. 이 회장은 출장 기간 미국 동부의 바이오 클러스터와 서부 실리콘밸리를 종횡무진하며 각계의 거물급 경영진들을 잇따라 만났다. 세계 1위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테슬라를 이끄는 '셀럽' 일론 머스크까지 이 회장과 마주앉았다.

재계는 이 회장의 '마라톤 회동'이 삼성의 차세대 산업을 판가름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 회장이 만난 기업인들은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바이오·제약과 전장(전자장치)용 시스템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리더들이다. 이 회장 특유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불황에 맞설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빅테크·바이오·AI까지…이재용이 뜨면 삼성 웃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장 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장 왼쪽)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음식점에서 만남을 갖고 있다./사진 = 페이스북

이 회장은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 12일 새벽 귀국까지 매일 한 명 이상의 주요 기업인들을 만나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에 힘썼다. 빅테크 기업인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는 물론 인공지능(AI) 부문 석학과 존슨앤존슨·BMS 등 대형 제약사 CEO와 연쇄 회동했다. 삼성 주요 계열사와의 협력 강화·신사업 발굴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테슬라·스페이스X 등 굵직한 첨단 기술 기업을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의 만남에 이목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완전자율주행 반도체 개발, 전장(전자장치)용 시스템반도체 등 다양한 IT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이 회장이 머스크 CEO와 '독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삼성전자가 차세대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테슬라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의 회동 역시 삼성전자의 '수주 전쟁'에 긍정적 영향을 줄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세계 1위 반도체 팹리스 기업으로,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사 중 하나다. 고대역메모리(HBM)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전문으로 하는 삼성전자와 다방면의 계약 체결이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IT 수요 감소로 인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1분기 반도체(DS) 부문에서만 4조 5800억원의 적자를 내며 전체 영업이익이 95.5% 급감했다. 이 회장이 미국 내 주요 기업인들을 만나 특유의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한 것도 실적을 개선하고 차세대 먹거리를 찾을 때라는 내부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직접 나설 때마다 삼성전자의 수주 전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 '디시네트워크'와 체결한 5G 통신장비 공급 계약이다. 1조원대의 공급 계약 체결에는 이 회장이 지난해 9월 찰리 에르겐 디시네트워크 회장과 직접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 회동'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반도체·가전 등 전자업계의 업턴(반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 IT기술을 좌지우지하는 빅테크 기업과의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중요한 시기에 이 회장이 직접 나서 고객사 수주·사업협력을 진두지휘하면서 경쟁력 강화를 이끌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