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총장 "물러나겠다"…美 흔드는 이·팔 전쟁 후폭풍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열린 이스라엘 반대·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AFPBBNews=뉴스1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으로 촉발된 '반(反)유대주의' 논란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대학들은 반유대주의 시위 문제로 기부 철회·총장 사퇴 압박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유대인 영향력이 큰 미국에서 이 문제는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CNN·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리즈) 매길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총장과 스콧L. 복 이사회 의장이 사임을 발표했다. 지난 5일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나온 '반유대주의' 질문에 대한 매길 총장의 답변이 논란이 된 지 나흘 만이다.


복 의장은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매길 총장은 임시 총장이 임명될 때까지 (총장) 자리를 지키고, 그 이후에는 로스쿨 교수진의 일원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고, 이후 자신의 사임 소식도 전했다. 그는 성명에서 "매길 총장은 지난주 의회 청문회에서 5시간에 걸친 공격적인 질문을 받은 후 매우 불행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사임 배경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지난 5일 매길 총장의 청문회 참석 이후 유펜 경영대학원 자문위원회 위원, 동문, 대학 후원자,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당시 매길 총장은 '유대인을 학살하자'는 일부 학생들의 주장이 학교의 윤리 규범 위반이 아니냐는 엘리즈 스테파닉 공화당 의원 질문에 "그런 위협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면 괴롭힘이 될 수 있다"며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또 '유대인 학살'을 주장한 학생에 대한 징계 여부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를 향한 비판이 거세지며 유펜 거액 후원자의 기부 철회, 의회의 공식 조사 착수까지 이어졌다. 스톤릿지 자산운용의 로스 스티븐스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매길 총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1억달러(약 1320억원) 규모의 기부를 철회하겠다며 총장 교체 시 해당 결정을 재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버지니아 폭스 하원 교육위원장(공화당)은 대학 내 반유대주의 시위 관련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지난 7일 발표했다.

엘리자베스(리즈) 매길 팬실베이니아대(유펜·UPenn) 총장 /사진=블룸버그

미국 대학들은 지난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높아진 학생들의 '반유대주의' 목소리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기부금 철회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하버드대의 클로딘 게이 총장도 대학의 거액 후원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의 기부 중단 경고에 학교 내 반유대주의 시위 발생에 대한 공개 사과와 함께 유대인 학생 보호 및 반유대주의 대응 프로그램 확대 계획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내 유대인은 760만명가량으로 인구의 2.4%에 불과하지만, 미국 지도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나타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달 엑스에 반유대주의 음모론에 동조하는 글을 올렸다가 디즈니를 포함한 여러 기업으로부터 광고 중단을 통보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면서 미국 내에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 이번 전쟁이 내년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줄 거란 전망이 나온다.

8일 공개한 퓨 리서치의 미국인 대상 조사(11월27~12월3일) 결과 정치성향에 관계 없이 과반은 하마스에 이번 전쟁에 대한 큰 책임이 있다고 했지만, 민주당 지지층 50%는 이스라엘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했다. 또한 민주당 지지층 45%는 이스라엘의 대응이 과하다(going too far)고 했다.(모름 29%, 적절 18%, 과하지 않음 8%) 미시간 주 등 격전 지역에서 미국인 무슬림 지도자들이 바이든 대통령 지지 철회 의사를 밝히며 내년 대선에서 '바이든을 버리자'(AbandonBiden)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