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용지에 당황"…투표장 찍던 유튜버, 경찰에 끌려나가기도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0일 서울 성북구 삼각산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해 줄 서 있다. 2024.04.10. [email protected] /사진=정병혁

제22대 총선 본투표가 치러진 10일, 쌀쌀한 아침 날씨에도 이른 시각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았다. 벚꽃 나들이에 앞서 투표소에 들른 20대 커플부터 지팡이를 짚고 나온 어르신, 홀로 투표장을 찾은 30대 직장인과 3대가 함께한 가족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 한 표가 투표함으로 향했다.

투표소 앞에 긴 줄이 생기면서 유권자들 사이에 미니 토론회가 열리는가 하면, 투표장 안에서 인터넷 방송하던 유튜버가 경찰에 연행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50㎝(센티미터)가 넘는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와 반입이 금지된 대파·일제샴푸 등도 이번 총선 투표에서 화젯거리였다.


"한강 나들이 가요"…'벚꽃 투표'에 긴 줄, 미니 토론회도이른 아침엔 어르신 위주였던 투표소 앞 줄은 시간이 갈수록 연령대가 다양해졌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투표소에서 첫 투표를 한 69세 남성 A씨는 "국민과 지역 사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당선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했다. 같은 곳에서 투표한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농산물 도매 일을 한다는 67세 남성 B씨는 "투표하는 일을 잊지 않으려고 퇴근하자마자 달려왔다. (22대 국회는) 합리적으로 일하는 국회가 됐으면 한다"고 투표 소감을 전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본투표일인 10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투표소장에 5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어르신도 두 손으로 보행기를 꽉 잡고 투표소 내부로 몸을 이끌었다. /사진=김지은 기자

봄 나들이를 가기 전 투표장을 찾은 이들이 특히 많았다. 서울 마포구 성산2동 투표소에서 만난 20대 커플은 "조조 영화로 '쿵푸팬더4'를 예매해놨다"며 "영화 보고 나선 밥 먹고 한강공원 쪽으로 나가서 나들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62세 여성 C씨는 "오늘은 줄이 길어지기 전에 투표를 마치고 꽃구경하러 가려고 한다"고 웃어 보였다.


이른 시각을 지나 대기 줄이 점차 길어지자, 유권자들 사이에서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할지 미니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60대 D씨는 법 잘 지키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도 법을 안 지키는 어떻게 자식들한테 지키라고 하겠느냐"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그러자 과거에만 머물지 말고 미래 정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년인 E씨는 "이미 지나간 일은 국민 판단에 맡기고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국민들 어떻게 잘 살게 해야 할 건지 고민해야 한다"며 "서로 욕하고 헐뜯기만 하니까 머리 아프다"고 말했다.

'51.7㎝' 투표용지에 당황…지정투표소 혼선도역대 최장의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당황스러워하는 유권자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이번 총선의 비례대표 투표용지에는 38개 정당이 표기돼 길이가 51.7㎝(센티미터)에 달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비례대표 정당 투표 번호는 1·2번 없이 3번부터 40번까지 나열됐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1동 제6투표소 앞에서 만난 70대 F씨는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너무 길고 당 이름들도 기존 당명이랑 달라 알아보기가 힘들다"며 "노인들에겐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강동구에서 투표한 41세 남성 G씨는 "보통 투표용지를 접을 때 가로로 반을 접으면 도장이 다른 후보자나 정당 기표란에 번져 무효표가 될까 걱정돼 세로로 접곤한다"며 "그런데 이번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세로로 한번 접으면 너무 길어져서 세로로 접고도 (가로로) 한 번 더 접었다"고 말했다.

지정투표소를 모르고 잘못 찾아온 유권자들도 더러 있었다. 50대 여성 H씨는 "선거인명부에 이름이 없대서 크게 당황했지만, 선거안내원들이 빠르게 알려줬다. 공약까지 다 살피고 왔는데 제일 중요한 걸 놓쳤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와 달리, 본투표는 주민등록상 거주지 지정투표소에서만 투표할 수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한 투표소에 투표소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천현정 기자

대파·일제샴푸 등 아이템전에 '긴장감'…투표용지 훼손 등 소동도이번 총선 판에 때아닌 '아이템 전쟁'이 벌어지면서 곳곳 투표소 내 긴장감도 감도는 분위기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대파를 들고 투표하는 '대파 챌린지'로 대여 공세에 나서자, 여권에서 일제샴푸·위조된 표창장 등을 앞세워 맞불을 놓았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정치적 표현물로 간주되는 물품은 투표소 내에 반입할 수 없으며, 이들 물품은 모두 정치적 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광주 동구의 한 투표소에서는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찢어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성 I씨가 기표소에 있던 어머니의 도움 요청에 기표소에 들어갔고, 이를 목격한 선거사무원이 "제삼자가 기표를 본 경우 해당 투표용지를 무효로 처리해야 한다"고 고지하자, I씨가 투표용지를 찢어버린 것이다. 선관위는 I씨를 투표용지 훼손 혐의로 고발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에서는 주취자가 투표한 뒤 '투표장소를 찾기 힘들다'며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광주 광산구의 투표소에서는 개인 유튜버가 투표소로 향하던 유권자들을 촬영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투표소 내부를 촬영한 선거법 위반 사례는 아니지만, 선관위는 유권자에게 심리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해당 유튜버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9일 오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대구 중구 동성로 방문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이 대파를 들고 있다. 2024.4.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