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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실패를 통해 배우는 지혜

CEO 칼럼 최동수 조흥은행장 |입력 : 2004.07.19 10:42|조회 : 13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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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필자는 소위 여신전문가로 조흥은행 여신담당 상무로 스카우트됐다. 온 나라가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시절 조흥은행도 대규모의 기업대출 부실로 은행의 존립이 위태로웠다. 한 가지 사례를 들면, 조흥은행은 당시 한보철강 부실채권 약 5000억원을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하면서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적이 있다.

외국은행에 근무하면서 여신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몸에 배어 있었던 필자로서는 일종의 큰 충격이었다. 수 천억원의 손실을 발생시키면서 여신의 결정과 사후관리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원인을 철저하게 파악해 다시는 같은 실패를 반복치 않으려는 처절한 자기반성이나 실패를 교훈으로 삼는 제도의 수립 등은 필자의 경험으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담당부서에 동 실패사례를 사례연구로 만들어 직원들에게 전파할 것을 지시했지만 열흘 정도가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를 보고 필자는 자신이 너무 순진해 한국의 실정도 모르고 무리한 지시를 했음을 깨달았다.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현실 여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이해했다. IMF 외환위기 시절 한보, 기아, 대우 등 대기업의 부실화로 인해 기존 5대 시중은행 중 온전하게 남아 있는 은행은 없다.

그러나 그 시절은 변명할 구실이 있었다. 자금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던 경제개발 연대에 지배구조가 불확실한 시중은행장들은 정부의 개발 드라이브 정책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는 핑계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이후 은행권의 천문학적인 신용카드와 가계대출부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동안 국내 시중은행들은 대규모 부실사례를 수없이 경험해왔으면서도 이를 조직적 차원에서 조직의 지혜(Institutional Wisdom)로 자산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별로 없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일을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패를 회피하려는 노력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실패를 터부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개인이나 조직은 퇴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불필요한 비용이 소요되고 돌이킬 수 없는 조직의 실패로도 연결된다.

실패의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를 사례 연구로 만들어 임직원들에게 교육시키는 한편, 관련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이를 매뉴얼화해 놓으면 실패사례는 쓸모없고 짐을 주는 부채가 아니라 중요한 자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사례의 자산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나 조직차원의 노력과 관련해 아직도 국내은행은 선진은행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심사분석에 관한 교육, 현업에서의 심사분석, 심사매뉴얼, 심사 및 사후관리 규정, 여신정책, 마케팅전략, 프로세스 등에 대한 임직원의 일관된 이해, 이 모든 것이 일체가 돼 일관적이고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은행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98년 환난위기 이후 6년이 지난 오늘도 조직적인 학습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못한 것을 보면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아마도 사례 연구를 하고 교훈을 얻으려면, 그 당시 관련된 수많은 당사자가 담담한 마음으로 장시간에 걸쳐 토론을 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언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선배들이 잘못한 점에 대하여는 집요하게 질문하고, 어려운 답변을 받아내야 할 경우도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무서워 "이제 와서 과거를 밝힌들 기왕의 부실대출이 다시 건전자산이 되겠느냐?", "그만하면 됐다"고 덮고 넘어 가자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후배들은 또 다시 비슷한 유형의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 또한 극복해야 할 우리 문화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되며, 어려운 점을 무리없이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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