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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21세기 변화의 흐름 타야한다

[인사이드][노조의 새로운 길]<상>위기의 시발점은

성화용의인사이드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입력 : 2005.05.23 08:29|조회 : 7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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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노조 비리 쇼크'가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당황과 분노, 변명과 욕설,반성과 단죄가 얽혀 뒤죽 박죽이다.

기아차와 항운노조가 취업장사로 물의를 빚었고 택시노련의 기금유용, 한국노총의 복지센터 건립관련 비리, 현대차 노조의 취업장사가 다시 되풀이되면서 한달이 멀다하고 문제가 터지고 있다.

국민은행노조와 버스노조 비리는 오히려 죄질에 비해 주목을 덜 받은 편이다. 노조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 이런 참담한 위기는 처음이다.

'헌신'으로 쌓아올린 수십년의 노동운동사를 불과 반년만에 허물어뜨린 채 망연자실해 있는 노동계를 향해 우리 사회가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왜 노조가 이렇게 됐나. 무엇이 노조를 무너뜨린 것인가.

그러나 아직도 노조는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다. 노동계 내부에서는 '자본'과 '공권력'의 의도된 공격이라는 음모론적 시각이 수면아래 잠복중이다.
거센 비난 여론에 목소리를 낮추고 있을 뿐, '대의원 대회'가 열릴 때 쯤이면 누군가 다시 의장석을 점령한 채 '투쟁'을 외칠지도 모른다.

노동계 비리를 역사적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도 여전하다.

정부와 자본의 노조 길들이기와 무관치 않다, 역대 정권이 노동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면서 동시에 이권을 미끼로 순치시키려 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갈라놓으려는 시도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기업의 노조 매수가 횡행했다, 이런 배경이 노조비리의 온상이 됐다는 것이다.

노조 혼자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이러한 양비론의 시각 역시 노동계 내부 여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모태로 국회에 진입한 민주노동당은 지난 1월 기아차 비리에 대해 "일부 노조간부의 부도덕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금물이며 이 사건을 통해 대기업 노조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비이성적 행위"라고 논평했다. 강한 경계심이 엿보인다.

비리가 잇따라 터져나오자 지난 11일 논평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망각한 일부 노조관계자들에 의해 민주노동 정신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노조 스스로 썩은 사과를 골라내야한다"고 했다. 한 발 물러나 '썩은 사과'라는 답이 나왔지만 '음모론'과 '양비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느낌이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공식석상에서 "비리사건의 본질은 전근대적 노무관리 시스템에 있다"고 말했다. 역시 노조의 위기를 '시스템'에 돌리고 있다.

사실 모두 틀린 얘기는 아니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양대노총과 대기업 노조는 막강해졌지만 정부는 노동계와의 대립을 기피하며 제대로 견제를 하지 않았다.

노조와 대결하는 것 보다는 보조금을 지급하며 '포섭'하는 편이 훨씬 수월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유익하다는 짧은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민단체는 노조를 한 편으로 여겨 모른척 했고 사용자 또한 노조를 적당히 구슬러 가며 먹고 살기에 급급했다.

둘러보면 이렇게 노조가 썩어야할 이유들이 많이도 발견된다. 사실 수사를 통해 드러나기 전에도 대충 알고들 있었다. 이해당사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다.

취업장사, 기금유용, 청탁과 뇌물, 뻔한 얘기가 이제서야 드러나게 된 건 균형점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조의 부패는 사회 전반의 탁도(濁度)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달라졌고 노조는 그자리에 머물렀다.

덮어두고 덮어두다가 결국 노조의 취업장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묵인의 끈이 느슨해질 무렵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노조 비리는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의해 '노출'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통일중공업 노조의 경영진 폭행이나 건설플랜트 노조의 쇠파이프 시위에 수십명의 전경들이 부상당한 사건 역시 노조의 눈으로 보면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폭력'을 군사독재 시절의 정당방어 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달라진 사회와 여론이 그 원인과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지 노조 지도부도 이제는 냉정하게 스스로를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노조가 찾아야 할 답이 여기에 있다. 비리에 대한 모든 변명과 이유, 역사적·양비론적 논거들은 인내와 이해심으로 동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노조 스스로 이렇게 게으르고 오만했다는 사실마저 부인한다면 '무엇이 노조를 무너뜨렸나'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이해를 구할만한 답은 나올 수 없다.

양노총이 국민앞에 사과하고 자정방안을 내놓는 건 그저 형식일 뿐이다. 믿지 않는다. 노동계는 정치권과 비슷한 취급을 받아도 할말이 없다.

다수의 청빈한 노동운동가가 앞으로 나와야 할 때다. 사회의 성숙과 시대 흐름을 놓친 '방심'과 '방관' 대해 스스로 엄하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데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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