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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시장주의에 대한 소고

[김석규 교보투신운용 대표이사]

CEO 칼럼 머니투데이 오승주 기자 |입력 : 2008.04.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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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시장주의에 대한 소고
"런던 증권거래소로 오라. 이곳은 법정보다 더 존경 받을 만하다. 너는 각국 대표들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 모여 있는 것을 볼 것이다. 유대인, 이슬람교도, 기독교인이 마치 한 신을 섬기는 것처럼 평화롭게 거래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한 말이다.

자본주의 태동기와 발달과정을 직접 목격했던 근대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은 볼테르의 이 말처럼 시장메커니즘이 가져다 주는 절묘한 조화와 균형에 매혹되었다. 저 유명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역시 당대의 지식인들을 사로 잡았던 이러한 시장의 마술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심지어 시장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고 그들의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듦으로써 인류의 사회화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헤겔이 추구해 왔던 개인성과 보편성의 화해, 그리고 조화의 상태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일련의 시장예찬론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은 아마도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 하이에크일 것이다.

오랜 학문의 여정 속에서 하이에크는 오직 시장이라는 자생적 질서만이 인류를 문명사회와 번영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케인즈와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당대에 하이에크는 적어도 세상의 관심 면에서는 케인즈에 크게 미치지 못했지만 시카고학파가 부각된 이후 새롭게 재조명되었고 오늘날 자유주의 철학의 원조로 간주되고 있다.

하이에크가 사망한지도 20년 가까이 되어 가지만 그가 살아온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환영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과장된 표현일수도 있겠지만 지난 수년간 시장예찬론은 하나의 열병처럼 한국의 주류사회를 지배해 왔다.

이는 진보적인(?)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나 신자유주의 열풍 등의 시대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된다.

자율과 개방을 근간으로 한 시장주의가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기제로 작동하며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통하여 한국의 시장예찬론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시장예찬론자들이 비판의 주 대상으로 삼았던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한국자본주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더 시장친화적인 시기였다는 점이다.

한국경제는 군사정권 이후 매우 오랜 기간 동안 국가의 계획과 통제에 영향을 받아 왔다. 특히 금융자원에 대한 통제는 훨씬 더 오랜 기간 이어졌다. 당연히 시장원리가 무시되는 많은 정책들이 시행되었으며 이는 바로 하이에크가 가장 혐오하고 경계했던 상황이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진행되었던 경제계획은 이미 그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사회주의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강력했던 그 시기에 일익을 담당했거나 혜택을 보았던 많은 인사들이 오늘날 시장예찬론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지한 역사적 성찰을 갖추지 못한다면 오늘날의 많은 시장예찬론은 정치적 프로파겐다로 치부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논리도 역사성을 상실한 주장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시장주의가 주류사회에서 일종의 절대선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자율과 개방의 미덕은 그 유효성이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독점화의 경향이나 외부경제의 문제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시장의 역사는 시장이 극단의 비효율적 상태로 진입할 수 있음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는 효율적 시장가설과 관련한 오랜 논쟁에서 행태주의 재무학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는 지금까지의 상업역사에서 인류가 이룩한 최선의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이 완전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선을 완전성으로 간주하는 순간 이는 도그마가 되고 진보와 개선의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한국의 시장예찬론이 이러한 오만의 우를 범할까 참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역사의 종언'을 철회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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