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056.75 680.74 1133.30
▼25.83 ▼10.07 ▲7.5
-1.24% -1.46% +0.67%
양악수술배너 (11/12)조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10/18)
블록체인 가상화폐

노브라 & 노타이

[웰빙에세이]목줄에 목매지 말자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입력 : 2009.07.02 09:33|조회 : 399335
폰트크기
기사공유
넥타이 왜 매나? 20년 넘게 넥타이를 매왔지만 나는 지금도 이유를 모른다. 이유도 모른 채 그 오랜 날들을 그냥 따라했다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무작정 따라하는 게 넥타이뿐이랴. 먹고, 놀고, 일하는 일상이 거의 매뉴얼대로 따라하기다. 매일 면도하고, 머리 빗고, 양복을 차려입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들 모양으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래도 면도하고 머리 빗고 양복을 입는 것은 실용적인 면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넥타이만큼은 도무지 그 필요를 모르겠다. 혹시 급하면 손수건으로 쓸까 싶은데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다. 유사시 허리띠로 쓸까 싶은데 그런 경우도 없었다. 한겨울 바람막이는 어떨까. 그거야 목도리를 두를 일이다. 가끔 진한 술자리에서 넥타이를 풀어 머리띠로 쓰는 사람을 보는데 내가 그런 적은 없다.

그러니 넥타이는 실용적인 면에서 정말 쓸데 없는 물건이다. 쓸데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해로운 물건이다. 목줄을 단단히 매 숨통을 죄는 것이 몸에 좋을 리 없다. 이 더운 여름날 다들 고역이다.

그렇다면 넥타이는 왜 매나? 첫째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매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것이 뭔가 패션감각이 있어서 일 것이다. 바로 이 패션감각이 나는 불만이다. 도대체 누가 넥타이를 패션용으로 만들고, 그걸 자꾸 부추기는지 참 고약하다.

유래를 찾아보니 1660년 루이 14세가 처음 그랬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패션감각에 혹해 불편한 목줄을 달고 다닌 지 수백년이나 됐다. 그러니 누가 거스르랴. 루이 14세, 짐의 오랜 뜻인 것을….

그런데 나는 이제 넥타이 매는 이유를 따지고 싶어졌다. 별것도 아닌데 별것인 양 당연시해온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걷어내고 싶어졌다. 인간은 과거 경험의 총체적 정보체다. 의식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입력된 정보대로만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 입력된 정보에 불필요하고, 소모적이고, 반생명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단순한 것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다. 알맹이가 잡동사니에 파묻혀 버렸다. 다들 옷을 잔뜩 입고 버둥댄다. 갖가지 옷을 사들이고 그 옷에 주렁주렁 치장하느라 바쁘다.

집에서는 반바지 하나면 되는데 문 밖을 나서려면 이런저런 장식들로 자신을 포장하느라 분주해진다. 집안에서는 '옷차림에 무심한 나'로 있는데 현관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나를 포장한 옷차림'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모두 벌거벗고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가 옷차림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물론 옷 잘 입으면 멋있다. 얼굴 뜯어 고치면 예쁘다. 그 멋에 홀려 과시하고 과용한다. 그러나 결국 값비싼 겉멋일 뿐이다. 겉멋에 에너지를 쏟다보면 내 안은 빈약해진다.

나는 오늘도 넥타이 매고 일터로 간다. 오늘이 새 날인가? 수십년 아무 생각없이 넥타이 매듯 항상 그날이 그날이라면 새날은 없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살아서는 새로움을 볼 수 없다. 온전하게 이 순간을 즐길 수 없다. 낡은 정보에 갇혀 살 뿐이다. 숨가쁘게 버느라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이리저리 쓰느라 정신만 산란할 뿐이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으리라. 그러나 모두 똑같이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고단한 삶의 전투를 치른다. 유행과 패션을 좇느라 여념이 없다. 좇으면 그건 나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가짜다. 천연성이 사라진다. 이제부터는 넥타이 맬 때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목줄에 목매지 말아야겠다. 아니, 날씨도 더운데 이참에 매뉴얼 좀 바꾸면 어떨까. 30도 넘는 날에는 '노브라&노타이'로.

  ☞웰빙노트

그대는 '깨어 있는' 만큼 '존재한다'. 좀 더 밝게 존재하고 싶다면 좀 더 깨어 있으라. 깨어 있음 속에서 존재가 나온다. 깨어 있지 못한 만큼, 그대의 존재는 사라진다. 그대가 만취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거기에 그대의 존재는 없다. 잠잘 때도 그대는 거기 없다. 이를 지켜본 적이 있는가? 깨어 있게 될 때 그대는 변화한다. 그대는 존재의 중심 속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거의 만져질 듯이 느껴진다. 무의식 속에서 잠을 자거나 깨어 있지 못하면 존재의 느낌은 줄어든다. 즉 존재의 느낌은 깨어 있음과 비례하는 것이다.<오쇼 라즈니쉬, 위대한 만남>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 절에 가는가? 왜 교회에 가는가? 그때그때 스스로 물어서 어떤 의지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삶이 개선됩니다. 삶을 개선하지 않고 종교적인 행사에만 참여한다고 해서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무엇 때문에 내가 절에 나가는가, 무엇 때문에 내가 교회에 나가는가 그때그때 냉엄하게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적인 타성에 젖어서 신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어리석은 짓을 할 수가 있습니다. <법정스님, 일기일회>

한가지 색깔만으로 세상이 칠해져 있다면 세상은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노을빛이 사라진 암흑의 하늘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푸른빛을 잃은 밤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합니다. 세상을 온통 빨간 빛깔의 꽃으로만 덮는다면 그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들은 살 수 없어 할 것입니다. 노란 해바라기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모조리 노란빛으로만 채워놓은다면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