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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장불입' 시인과 '고알피엠' 여사가 사는 법

[웰빙에세이] 길과 집이 하나되는 사람만이 행복하다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입력 : 2011.11.25 12:10|조회 : 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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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지리산 행복학교>의 2탄이 떴다. 1탄이 공지영이라면 2탄은 글쓴이가 '낙장불입' 시인 이원규다. 그는 기자 출신이다. 그것도 잘 나가는 신문사에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의 천성은 아니었나 보다. 나처럼….

그는 나보다 훨씬 철저하고 지독하다. 서울살이 10년만에 사표를 던지고 서울역에서 보름간 노숙자 생활을 한다. 그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것을 '내 인생의 마지막 번지점프'였다고 한다.

이제 입산 14년차. 그가 사는 법은 '빈집 전전하기'다. 1년에 50만 원쯤 집세로 내는 초가삼간을 돌아다니며 산다. 그렇게 전전한 집이 일곱 번째다. '자발적 가난'을 자처했지만 실은 '자발적 빈곤' 수준이다. 그러나 그는 가볍다. 자유롭다. 신나고, 외롭고, 행복하다. '일하는 것이 곧 죄일 때 그저 노는 것은 또 얼마나 정당한가'<이원규 詩, '독거' 중에서>

입산의 시작은 섬진강변의 빈 토굴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사흘 내내 잠만 잤다고 한다. 아마 평생 가장 달콤한 잠이었을 것이다. 한 달 생활비는 20만 원 정도. 처음에는 2만원으로 한 달을 버티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호화 생활이다. '고알피엠' 여사와 함께 100만원 남짓 벌어서 쓰는 것 같다. 게다가 모터사이클 2대를 굴리니, 그를 가난하다고 해야 하나, 럭셔리하다고 해야 하나. 번지점프를 타고 자유롭게 낙하하는 그의 삶은 가난하지 않다. 풍요롭다.

그는 말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가 아니라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배수진이 나를 죽이고 다시 살렸다." 그에 비하면 나의 소박함이란 얼마나 부유한가? 얼마나 고급인가?

그에게 인생은 길이다. 집이 아니다. 그래서 '지리산 2탄'의 제목도 <멀리 나는 새는 따로 집이 없다>다. 이 책에서 그가 집 대신 길을 택한 이유를 들어보자.

"철새는 따로 집이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따라하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누구나 그럴 듯한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겠지만,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욕망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고 말 것인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텃새처럼, 아니 이미 새가 아닌 닭처럼 철망 속의 둥지에 깃들어 살 것이냐, 철새처럼 풍찬노숙의 길을 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어차피 집과 집을 이으면 길이 되고 그 길의 마지막 집은 무덤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 집이라는 해괴한 물건(?)을 포기했다. 버렸다. 패대기쳤다. 이 세상의 모든 집을 안식처가 아니라 과정의 길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야망이 크다. 길과 집을 하나로 합치려 한다. 처음에는 집과 집을 이으면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을 길 중심으로 풀어간다. 어느 길을 걷든 걷다가 머무는 곳을 집으로 삼는다. 아니, 어느 길을 달리든 달리다 멈추는 곳을 집으로 삼는다. 그는 바람 같이 쏘다니는 '폭주족'(그는 '기마족'이라고 우기지만)이니까.

"입산 시절부터 내 집을 꿈꾸지 않는 대신 선택했으니 그동안 모터사이클이 진정한 나의 집이었다. 집을 등에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아니라 타고 다니는 한마리 달팽이요, 멈추는 바로 그곳에 곧바로 텐트를 칠 수 있는 나의 여인숙이었다."

역맛살이 낀 사람은 할 수 없다. 돌아다녀야 한다. 그는 신나게 걷고, 신바람 나게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길과 집을 하나로 합친다. 집과 집을 이은 게 길이 아니라 길이 곧 집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그의 마지막 결론은 이것이다.

"그동안 집과 집을 이으면 그것이 길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수정해야 했다. 길이 곧 집이었던 것이다. 발길 닿은 곳이 길이자 집이었고, 하룻밤 머무는 그곳이 어디나 이미 도착해야 할 집이었다. 난생 처음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카메라 한 대와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세상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 모든 곳이 그립고도 그리운 곳이자 서럽고도 서러운 곳이었다. 세상 도처의 길들이 눈물겨운 고향이었고 날마다 돌아가야 할 집이었다. 다시 길동무도 없이 홀로 길을 나선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길이 곧 집이다."

이로써 가는 길과 머무는 집의 긴장 관계는 말끔히 해소된다. 길을 가는 사람과 집에 머무는 사람이 다르지 않다. 그는 매 순간 자기에게로 가서 행복과 평화의 집에 머문다. 틱낫한 스님이 가르치는 '걷기 명상'이 그런 것이다. 먼저 두세 걸음 걸으며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도착했다." 다시 두세 걸음 걸으며 속으로 말한다. "나는 집에 있다." 이렇게 걸으면 매 순간이 집이 된다. 목적지가 된다. 내가 찍는 발자국은 어디로 움직이는 흔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삶이 집 중심으로 풀린다.

시간이 많은 백수지만 멀리 돌아다니지 않았다. 멀리 가서 걷는 것이 번거롭다. 가까운 곳을 걸어도 걷는 것은 같다. '어디를 걷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걷느냐'다. 백운호수길, 백운산길, 청계산길, 학의천길, 안양천길…. 내가 10년 이상 걷고 자전거로 달리는 길은 반경 10km 안에 있다. 가끔 동선을 넓혀 양재천을 달리거나 관악산 자락을 타도 반경 20km 이내다. 시골에 가서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더 아름다운 곳을 탐할 이유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 말고 내일, 지금 말고 다음 , 이것 말고 저것, 이곳 말고 저곳을 구하는 습성이 너무 깊숙이 몸에 배인 것이다.

그래도 역맛살이 낀 '낙 시인'은 나처럼 동네를 빙빙 돌지 않겠지. 그건 텃새, 아니 앞마당의 닭이나 하는 짓이라고 탓하려나. 하지만 그도 알 것이다. 삶을 길 중심으로 풀든, 집 중심으로 풀든 길과 집이 하나 되는 사람만이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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