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082.58 690.81 1125.80
보합 17.98 보합 11.32 ▼2.8
-0.86% -1.61% -0.25%
양악수술배너 (11/12)조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10/18)
블록체인 가상화폐

[박정태 칼럼]에코노미아와 크레마티스티케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60>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 2014.07.18 10:49
폰트크기
기사공유
[박정태 칼럼]에코노미아와 크레마티스티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다시 읽는다.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날, 19세기를 살다간 한 고집 센 괴짜의 독특한 인생 철학을 감상하며 더위를 식히는 것도 괜찮은 피서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가리켜 생태주의 문학의 고전이라고 하지만 나는 특별한 선입관 없이 그냥 읽는다.

그저 한 문장 한 문장이 좋다. "참새가 집 앞의 호두나무에 앉아 지저귈 때 나는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다." 천진난만한 친구 같으니, 하긴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스물여덟 되던 해 여름이었다. 아직 청춘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산 것 같은 예리한 통찰의 구절도 나온다.

"생계를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인간만큼 치명적인 실패자는 없다." "그냥 내버려둘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은 더 부유하다고 할 수 있다." "남아 돌아가는 부는 쓸모 없는 것들밖에 살 수 없다. 영혼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 없다." "가장 커다란 소득과 가치는 제대로 평가되는 일이 가장 드물다."

대단한 역설이지만 촌철살인의 진실을 담고 있다. 오늘도 열심히 바쁘게 산 것 같지만또 하루 의미 없이 소진해버린 게 아닌지 반성하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요즘처럼 고령화 시대니 뭐다 해서 노후 대비에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펀치를 날려준다.

"이처럼 쓸모 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인생의 황금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해 먼저 인도로 건너가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해야 했다."

'월든'을 펼치면 맨 처음 나오는 장(章) 제목이 경제(economy)다. 18개 장 가운데 가장 길고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분량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 대단한 경제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고 숲에서 지낸 2년간의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시시콜콜 알려준다.

집 짓는 데 모두 28달러12.5센트가 들었는데, 판자 사는 데 8달러3.5센트, 벽돌 값으로 4달러를 썼으며, 첫 해 영농비로 14달러72.5센트를 지출했고 수확물을 팔아 23달러44센트를 벌었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다. "경제란 입으로는 가볍게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월든'을 잘 읽어보면 소로가 아담 스미스의'국부론'이나 데이비드 리카도의'정치경제학과 조세의 원리' 정도는 이미 독파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역시 살아가는 데 생활의 경제학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맹목적인 효율성 중시와 지나친 부의 추구를 경계했을 뿐이다.

가령 이런 문장을 보자. "생활 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바로 먹고 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존 메이너드케인스를 떠올려주는 대목이다. 케인스는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이렇게 썼다.

"불굴의 정신으로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우리 모두를 경제적으로 풍요한 환경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도래할 때 그 풍요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삶의 기술을 활짝 꽃피우고 생계수단을 벌기 위해 자신을 팔지 않아도 될 사람들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돈벌이 기술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가정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자연스러운 상행위와 고리대금업처럼 돈 벌이 그 자체가 목적인 부자연스러운 상행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자를 가리켜 에코노미아(economia)라고 했는데, 경제학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후자는 크레마티스티케(chrematistike)라 했는데, 이재학(理財學)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와 이재는 분명히 다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진짜 잘 살 수 있다. 소로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한다.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은 배우지 않을 것인가?"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