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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친구들이 나보다 훌륭해 보이는 날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69>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 2014.12.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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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친구들이 나보다 훌륭해 보이는 날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장갑에다 털모자까지 쓰고서 호수공원을 달린다. 몸이 무거워서인지 한 바퀴, 겨우 5킬로미터를 뛰고 그만 멈춘다. 거친 호흡과 함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지만 온몸에서 따뜻한 김이 솔솔 올라온다. 날이 추울수록 달리고 나면 더 상쾌해진다.

사무실 바로 앞이 호수공원이지만 이렇게 달리기 시작한 것은 한 6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도 20년 넘게 피워왔던 담배를 끊고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보자고 결심한 무렵부터인 것 같은데, 매일같이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는 직업이라 긴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보자고 시작한 운동이 달리기였다.

하고 많은 운동 중에 굳이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그게 제일 쉬웠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골프나 테니스처럼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운동이 아니고 수영장이나 헬스장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 그냥 운동화 신고 사람 붐비지 않는 적당한 길을 골라 달리면 된다. 공기 좋고 경관 수려한 곳이면 금상첨화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함께 운동할 상대나 동반자가 필요 없으므로 혼자서 달리고 싶을 때 달리면 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마라톤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것은 매일같이 달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한번에 수천 명씩 달리는 이런 대회야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라톤에서는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은 모두가 승리자다.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자는 아름답다.

연말 인사철을 맞아 여기저기서 누가 사장으로 혹은 임원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에 새로 사장 자리에 오른 동창생 친구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며 문득 생각해본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219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무직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평균 22.1년이 걸리고 신입사원 1000명 가운데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인원은 7명(0.7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바늘구멍을 뚫고 기업의 꽃이 된 이들이니 부러움을 살 만하다.

이들은 틀림없이 인정 받을 만한 능력을 갖추었을 것이고 남들보다 뛰어난 실적을 올렸을 것이다. 밤낮없이 회사를 위해 일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를 내건강과 가정보다 더 열심히 챙겼을 것이다.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런 노력과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엄청난 연봉과 명예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어느 순간 자신이 거대한 조직의 작은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음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발표된 두 재벌그룹의 빅딜에서 드러났듯이 기업은 오로지 효율성을 추구한다. 비록 창업주 이래로 내려온 사시(社是)의 첫째가 인재제일이라 해도, 오너의 최우선 가치가 의리라 해도, 그것들은매출액과 순이익이라는 엄연한 수치 앞에서는 그저 공치사에 불과할 뿐이다. 능률과 실적을 따지지 않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게 인간적 가치 따위는 유치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그래서 자신이 수십 년간 다니던 회사가 통째로 다른 그룹에 팔리고 회사 이름마저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통보 받게 되는 것이다. 수천 명의 근로자들은 고용승계 약속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나설 수라도 있지만 단지 1년간의 고용 보장이 주어졌을 뿐인 임원들은 아무 말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말하고 있을 것이다. 임원으로 혹은 사장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그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차피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필요한 것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치열한 승부욕이 아니라 비록 늦더라도 자신이 목표한 지점까지 최선을 다해 완주하는 것이다. 혹시 이번에 임원 승진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 '나를 사랑하는 노래'를 읊으며 담담하게 스스로를 위안하면 그뿐이다. "친구들이 나보다 훌륭해 보이는 날은/ 꽃 사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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