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071.23 670.85 1133.30
보합 9.21 보합 0.03 ▼0.6
-0.44% +0.00% -0.05%
메디슈머 배너 (7/6~)조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10/18)
블록체인 가상화폐

[김재동의 틱, 택, 톡] 이산가족 상봉에 부쳐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5.09.05 13:36
폰트크기
기사공유
오랜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서로를 품에 안은 이산가족들./사진=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오랜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서로를 품에 안은 이산가족들./사진=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것은 1일 퇴근길 버스 안에서였다.

“요번에 이산가족 상봉한다는데 나도 신청 좀 해 주라” “지난 번에도 했었잖아요” “그땐 그때고 다시 한 번 해봐” “둘째 큰아버님이 아직 계시겠어요?” “나두 그 양반 살아계시리라곤 생각 안햐. 그려도 그 후손은 있을 것 아닌개벼. 갸들이래두 내 한번 만나봤으면 싶어서 그랴”

'허, 참' 싶다. 큰아버님 소생이면 당연히 나보단 형님이나 누님일터이지만 ‘그 양반들이 남쪽의 작은 아버지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할까?’ 란 회의가 먼저 고개를 든다. 정작 나만 해도 이산가족은 남의 얘기인 듯 느껴지는 판 아닌가.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마치 신청접수중이기라도 한 듯 사연을 풀어놓으신다. “니 큰 아부지가 그때 서울대학병원 서무과에 근무하고 계셨어. 그러다가 싹 끌려간 건데. 그때 이북이 고향인 간호사랑 교제도 하고 있었거든..”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이야기. 옆 사람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제가 알아볼게요” 하고 끊으려니 “너 건성으로 하지 말고 꼭 좀 알아봐야 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신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에 없지만 이미 10여년 쯤 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바 있고 당시에도 불발돼 크게 실망하신 적이 있었다. 한동안 별말씀이 없으시더니 이번에 다시 꺼내 드셨다.

아버지가 1929년 기사생, 우리나이 여든일곱, 둘째 큰아버님이 세 살 위시라니 생존하신다면 우리나이 구십이다. 세상을 등지셨을 확률이 훨씬 높은 연세다. 말씀은 “돌아가셨겠지” 하면서도 만의 하나 기대를 부여잡고 애면글면 하신다. 헤어진 지가 60년을 훌쩍 넘어서도록 잊지 못하는 그 모질고 질긴 그리움의 정체는 뭘까?

신청방법 확인을 위해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접속해 보았다. 신청인의 사진까지가 필요하다니 시간 내서 청주를 다녀올 궁리를 하며 사이트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지난 7월31일 현재로 신청인이 12만9,698명에 이른다. 생존자 현황을 보니 90세 이상도 7,896명으로 11.9%, 89세부터 80세까지가 28,101명 42.4%로 가장 많고 59세 이하는 5,295명으로 8%에 그친다. 그리고 신청인중 사망자는 절반에 육박하는 63,406명(2015년 6월30일 기준)이다.

사연들을 훑어보았다. 올라온 글들은 짧고 건조하다. 아들 딸 들이 노부모를 대신해 올린 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글들에서조차도 드라마 같은 사연들의 무게가 느껴진다. 지난 회 차 상봉현장의 동영상들도 둘러보았다. 눈물이 지천이다. 주름진 손들이 늙은 눈자위를 훔치기 바쁘다. 세월에 치여 표정조차 어색한 노안들이 평생의 그리움을 풀어내면서 감격에 겨운 표정들을 짓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 이유는 수십 년 이데올로기의 장벽도 어쩌지 못한 저 퇴색하지 않는 그리움과 정 때문은 아닌지.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른 불행한 세대가 먹고살자고 안간힘을 쓰며 거친 세월을 헤쳐 나오면서도 결코 놓지 않았던 피끌림이 우리가 통일을 이뤄야할 이유가 아닌지.

3일엔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 푸틴러시아대통령과 나란히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국군대의 열병식을 관전했다. 이데올로기란 장벽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

얼마 전 개봉해 크게 화제를 모았던 영화 ‘국제시장’에도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나온다. 그런 감정이 생경한 젊은 세대조차 많이들 눈시울을 붉혔을 것으로 본다. 남의 불행에 대한 연민, sympathy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시급히 회복해야할 가치이기도 하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이후 19번이 성사됐다. 하지만 상봉자는 1만8000여명으로 전체 신청 대기자의 14.5%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미 신청자중 절반이 사망했다. 우리 윗세대가 스러져가고 있다. 단순히 그들의 恨만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을 지탱해온 소중한 가치도 사라져가는 중이다. 수많은 피를 머금은 채 이제는 박제가 되고 만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이 선한 가치를 더 이상 훼손시켜선 안될 것이다.

3일 오전 다시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 “너 내 사진 가지러 내려올 것 없다” “왜요?” “그냥 냅둬라. 형님이 살아계실 것도 아니고 조카들이 있다손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을 작은 애비 뭐 그리 반가워라 할까” 씁쓸한 체념의 여운을 남기며 전화를 끊으신다. 짠해지는 마음. 어느 순간엔 이런 짠함, 연민마저도 사라지리라.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