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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故 강대원 박사가 남긴 숙제

제1회 강대원상 시상식을 마치고

기고 머니투데이 홍성주 한국반도체학술대회 대회장 |입력 : 2017.03.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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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주 한국반도체학술대회장. 현 SK하이닉스 미래기술원장(부사장). /사진제공=한국반도체학술대회
홍성주 한국반도체학술대회장. 현 SK하이닉스 미래기술원장(부사장). /사진제공=한국반도체학술대회
지난달 14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제24회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 거행된 제1회 강대원상 시상식이 그것이다. 굳이 학계가 아닌 산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전세계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끼친 강대원 박사의 업적 때문이다.

강 박사는 1955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반도체 산업의 근간이 된 모스펫과 플로팅게이트를 발명했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날 약 400조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시장이 강 박사의 기술에서 시작한 것이다. 강 박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한국물리학회 종신회원으로 학문 발전에도 기여했던 그였지만 강 박사는 정작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줄곧 미국에서 활동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직접 기여한 바가 크지 않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원'이란 한국 이름을 끝까지 지켰던 강 박사가 고국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학술대회 대회장으로 시상식을 준비하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의문이었다.

가족대표로 시상식에 참석한 강 박사의 여동생 강성화 여사의 회고에 따르면 강 박사는 집과 연구실만 오가며 연구밖에 모르는 고집 센 열정가였다. 하지만 공교롭게 강 박사가 활발하게 연구하던 시기 한국은 반도체 후발주자로 기초기술 연구보다는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 열중했다.

강 박사가 미국의 벨연구소를 은퇴한 뒤 선택한 곳 역시 기초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소(NEC Research Institute)라는 점에 미뤄보면 당시 우리나라가 강 박사 같은 연구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 규모는 64억달러로 사상 최대 월간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며 수출 1위 자리를 지켰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분야 세계 1위가 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전체 반도체시장에서도 세계 2위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젠 기초연구에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럴 때 강 박사 같은 천재 반도체 물리학자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반도체 개발 역사의 아이러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산업 규모의 산업이 앞으로 또 나올 수 있을까. 반도체와 컴퓨팅 기술이 없는 다른 산업을 생각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를 기반으로 국가산업의 성장 정책을 전개해 나가는 게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일 것이다.

특히 확실한 경쟁력과 규모를 갖추고 있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이와 연관된 산업을 육성해 나가는 정책이 실효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강 박사의 업적은 생각할수록 대단하다. 강대원상이 이제야 제정됐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면서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드는 일이다.

앞으로 강대원상이 반도체 산업 종사자를 격려하는 것을 넘어 반도체 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역할까지 해주길 기대한다.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활동과 인재양성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밑거름이 되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계속 성장할 반도체가 국가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이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고 강 박사가 후대에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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