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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하는 이유-안나푸르나에서 배운 것

[줄리아 투자노트]

줄리아 투자노트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입력 : 2017.10.14 07:31|조회 : 1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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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고? 돈 많아? 그런 걸 왜 사?" 힙합 뮤지션 그레이가 광고에서 하는 말이다. 나 역시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옛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10월 황금연휴, 젊지도 않은 나이에 비싼 돈 주고 고생을 사서 하는 경험을 했다. 4000미터가 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까지 트레킹을 한 것이다. 이 글은 돈 주고 고생한 경험 속에서 느낀 감정을 정리한 것이다. 1인당 300만원이 넘는 고생의 행군은 내게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걸까.

사서 고생하는 이유-안나푸르나에서 배운 것

1. 예상치 못한 불운이 닥칠 수 있다=ABC까지 걷는 길은 내가 생각한 트레킹이 아니었다. 네팔 가이드 말에 따르면 150층짜리 건물을 걸어 올랐다 내려오는 것과 맞먹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거친 돌길을 빠르게 걸어야 하는 험난한 길이었다. 그날 묵을 숙소에 도착하기 위해 날이 어두워도, 비가 와도 무조건 걸어야 했다.

문제는 내 무릎이었다. 첫날 6시간 이상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내린 다음날부터 오른쪽 무릎을 굽힐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무릎 때문에 계단에서 걸음이 느려지면서 본진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운동을 안 하다 갑자기 해서 그렇다", "근육이 없어 그런다". "약해 보이는데 ABC 트레킹은 무리였던 것이 아니냐" 등의 말을 했다.

억울했다. 한달에 두번은 등산을 하고 일주일에 최소 4번은 헬스장에 가서 2시간씩 운동했다. 사람들에게 "저 20kg 무게 들고 스쿼트 20개씩 3세트 하거든요"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소용 없었다. 열심히 운동한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해할 수 없었고 억울하기만 했다.

살다 보면 '하필 내게 왜 이런 일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을 만날 때가 있다. 좋은 음식 먹고 운동 열심히 했는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성실히 일했고 성과도 좋았는데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고, 신중히 투자했는데 큰 손실을 볼 수도 있고,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는데 자녀가 엇나갈 수도 있다. 언제든 예상치 못했고 이해도 불가한 사건이 생길 수 있음을 ABC 트레킹에서 알게 됐다.

2. 고난은 극복하는게 아니다. 그저 견딜 뿐…=늘 역경을 딛고 성공한 자수성가 스토리에 반했다. 어려움을 이겨낸 승리의 삶은 언제나 감동이었다. 하지만 고난은 극복의 대상이 아님을 안나푸르나에서 배웠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찢어지는 듯한 아픔은 이겨낼 수 없었다. 당장 그만 두고 싶었지만 도로가 없는 그 곳에서 탈출할 길은 거액을 주고 헬리콥터를 부르거나 그냥 걷거나 둘 중 하나였다. 큰 돈이 없는 나는 고통을 견디며 천천히 계속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 환경에서 어려움을 딛고 ABC를 정복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나는 가이드에게 다음 마을까진 얼마나 남았는지 수시로 물어보며 다음 마을까지만 가자는 심정으로 간신히 걸어갔다.

역경을 만나면 대개는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진짜 역경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어렵고 힘들 땐 내가 그날 몫의 걸음을 간신히 걸어냈듯 하루의 삶을 그저 살아내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이겨내자”고 하는 것은 위로가 아님을 알았다. 견딜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는 것이 최선임을 알았다. 그러니 힘든 일을 당했을 때 극복하려 애쓰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고된 환경에서 그 날 주어진 몫의 삶을 사는 것이 최선임을 알았다.

3. 그래서 사서 고생해 얻은 가치=신기하게도 내가 약하고 어려우니 감사가 절로 나왔다. 절뚝거리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한국인들이 소염진통제도 주고 파스도 주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며 걱정해줬다. 나와 한 팀인 사람들은 뒤처진 나를 대신해 아들을 돌봐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사 뿐이었다. 아들과 남편은 멀쩡하고 나만 아프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산병을 걱정했는데 다리가 아파 천천히 걸으니 고산병은 없어 그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아들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스틱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걸으며 아들이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많이 아파?”라고 걱정해주는 아들의 존재만으로도 뿌듯할 수 있었다. 고통 속에 한걸음씩 내디디며 아들에 대한 불만은 사라지고 그간 잘해주지 못했던 것, 공부 안 하고 게임한다고 구박했던 것만 떠올라 회한이 느껴졌다.

내게 다시 ABC 트레킹을 갈 거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래도 큰 돈을 주고 고생한 보람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대자연 앞에 한없이 약하고 작아진 나를 경험하며 조금 더 낮아지고 조금 더 넓어지고 조금 더 비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또 다시 거친 안나푸르나 앞에 다시 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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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doordie11541  | 2017.10.14 22:53

항상 구독하는 독자입니다. 특히 중학생 아들이 있는 부모로서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비싼 경험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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