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 사건, 실종수사 기본도 지키지 않은 경찰

최영기 서울지방경찰청 특별조사계장(경정)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이영학 사건' 관련 피해 여중생 실종 사건의 초동대처가 부실했다는 의혹에 대해 감찰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스1

여중생 살인·사체유기 사건에서 규정을 어기고 초동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찰들이 무더기 징계 처분을 받게 됐다. 피해 여중생 어머니가 112 실종 신고 당시 긴급 출동 상황인 '코드1'이 발동됐는데도 담당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하겠다"고 해놓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본지 10월 13일 보도 "[단독]'살릴 수 있었던 13시간', 경찰의 기막힌 대응" 참고)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2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청사에서 '여중생 실종신고 사건 감찰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경찰청은 이영학 사건의 초동대처 부실 의혹에 대해 서울 중랑경찰서장, 중랑서 여성청소년(여청)과장 등 관련 경찰관 9명을 감찰 조사했다.

감찰 결과 현장 경찰관들이 실종사건 대응지침을 위반하고 경찰서장 등 관리 책임자가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점이 확인됐다.

서울청은 우선 중랑경찰서 여청수사팀 사건 담당 경찰관 2명이 "현장에 출동하겠다"고 허위 보고한 것을 확인했다. 지난달 30일 밤 11시20분 여중생 어머니로부터 실종 신고를 접수받은 112종합상황실은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해 긴급 출동 상황인 '코드1'을 발동했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당일 밤 11시33분 "현장에 출동하겠다"고 보고해놓고 사무실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경찰관(순경)은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고 감찰 조사과정에서 진술했다.

서울경찰청이 세운 '실종수사 업무체계 개선 계획'에 따르면 실종아동 등이 범죄 또는 사고 관련성이 의심되는 경우 관할서 여청 경찰관과 지구대 경찰 등이 병행해 현장에 출동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여청수사팀 인원(총 5명)은 실종 수사가 가능한 충분한 인력이었다. 이중 2명은 여청수사 담당을 맡았고 나머지 3명은 당직을 섰다.

중랑서는 비슷한 시간에 신고가 들어온 실종 신고 3건에 대해서도 모두 현장 출동을 하지 않았다. 피해 여중생 신고가 들어온 이후에도 10월1일 오전 0시53분부터 2시50분까지 총 3건의 실종 신고가 추가로 접수됐고 이들은 모두 20~50대로 성인이었다.

이중 2명은 자택으로 돌아왔으나 1명은 1일 낮 12시20분 서울 천호대교 남단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 역시 경찰이 초동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살릴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사건을 접수한 중랑경찰서 망우지구대 순찰팀장과 사건담당자 2명도 실종 여중생의 마지막 행적조차 묻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청 청문감사담당관 관계자는 "당시 지구대에 총 13명이 있었으나 피해 여중생 어머니의 말을 못 들을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며 "당연히 마지막 행적을 질문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피해 여중생 어머니는 112 실종 신고 후 당일 밤 11시45분 망우지구대를 찾아 이영학 딸(14)과 통화한 뒤 "딸이 A양(이영학 딸)과 만났다"고 말했지만 지구대 관계자는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망우지구대 순찰팀장과 사건담당자 2명에게는 '실종아동 및 가출인 업무처리 규칙(경찰청 예규) 제19조(추적·수사)' 위반이 적용된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실종아동 신고를 받으면 실종자 발견을 위해 목격자 조사 등 추적 조치를 해야 한다.

중간 관리책임자인 중랑경찰서 여청과장은 수사팀장으로부터 '실종아동이 범죄에 연루됐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중랑경찰서장에게 제때 보고를 하지 않았다. 상황관리관은 실종아동 신고를 받고도 현장 경찰관을 상대로 수색장소 배정 등 구체적 업무 지시에 소홀했다.

총괄 관리책임자인 중랑경찰서장은 현장 경찰관들의 실종사건 대응 지침 위반과 중요 사건 지연 보고·112신고 처리 지침 위반을 인정했다. 경찰서장은 실종사건 수사·교육과 업무체계 정비 등 실종 사건에 대한 총 책임자로서 관련 경찰관들을 지휘·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서울청은 이 같은 의무 위반 사실이 밝혀진 경감 이하 6명(여청수사팀장·여청수사팀 2명·순찰팀장·순찰팀원 2명)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인사 조치할 예정이다.
징계위원회는 늦어도 다음 달 안에 열릴 예정이다.

경정급 이상 3명(중랑서장·여성청소년과장·상황관리관)에 대한 조사 결과는 경찰청에 보고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서울경찰청 감찰 결과를 토대로 경정 2명은 징계위에 회부 하고 서장은 총체적 지휘책임을 물어 인사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