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때 관변단체 지원, 일방통보·강압에 따른 것"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화이트 리스트' 관제시위 주도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박근혜정부 시절 관변단체에 대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원사들의 자금지원은 불이익을 우려해 강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은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에서 열린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의 '화이트리스트' 첫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에 대해 "(청와대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2014년 당시 청와대는 15개 단체에 대해 30억원을 지원해줄 것을 전경련에 요청했고 전경련은 이를 회원사들에 전달하는 식으로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을 실시했다.

청와대는 2015년에도 31개 단체에 40억원을, 2016년에는 40개 단체에 40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전경련에 요구했다. 전경련이 실제 자금을 지원한 규모는 2014년 21개 단체에 약 24억원, 2015년 31개 단체에 약 35억원, 2016년 23개 단체에 약 10억원이었다. 2016년 자금지원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그 해 이버이연합에 대한 전경련 자금지원이 이슈화되는 등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청와대의 지원요구로 기업들의 자금을 받은 곳으로는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국민행동본부, 애국단체 총협의회, 선진화 시민행동, 엄마부대, 월드피스 자유연합 등이 있다. 관제시위를 전문으로 하는 소위 '아스팔트 단체'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곳들이다.


이 전 부회장은 "전경련은 기본적으로 기업과 정부의 관계를 원활히 해야 하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것을 잘 이행하지 않았을 때 (청와대에) 부정적 기류가 형성되면 경제정책이나 개별적으로 여러 면에서 회원사에 상당한 불이익이 예상됐다"며 "어쩔 수 없이 (관변단체 지원요구에) 따랐다"고 말했다.

또 "허창수 당시 전경련 회장도 '청와대가 시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아스팔트 단체에 대한 소액의 자발적 지원은 있었지만 청와대의 일방적 요구가 있기 전에는 적극적으로 자금지원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허 전 행정관은 조윤선·정관주 등 박근혜정부 시절 정무수석들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함으로써 전경련 및 회원사인 기업들로 하여금 약 70억원의 자금을 '아스팔트 단체'에 지원하도록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허 전 행정관은 또 월드피스 자유연합을 통해 20대 총선과 관련한 선거운동과 시위를 하도록 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허 전 행정관 측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전경련을 통해 시민단체를 지원하게 한 업무를 수행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같은 행위들은 피고인의 업무로 법령에 따른 업무로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실행과정에 참여해 죄책이 경미하다"며 "선거법 위반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