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페북, 알리바바는 되는데 카카오는 안되는 법은?

차등의결권 제도도입 논란이 뜨겁다. '주식1주=의결권 1표'의 주주 평등공식을 깨고 최대주주나 경영진 지분에 2표 또는 10표 등의 의결권을 부여하자는 것인데 안정적인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크다.

미국에서는 구글과 페이스북, 포드자동차는 물론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도 이를 운영하고 있다. 자국에서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자 알리바바는 홍콩 대신 미국 뉴욕거래소에 상장해 버렸고, 이를 본 중국 당국도 얼마 전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벤처 창업자 지원' 차원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맨손 창업한 이들이 투자를 받다 보면 나중에는 오히려 벤처 캐피탈(VC)이 최대주주로 등극해 창업자를 흔드는 일이 많으니 이를 차등의결권으로 보완하자는 것이 출발점이다.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도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다. 정부, 여야는 물론 시민단체 안에서도 이견이 있는데 최근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차등의결권이 벤처육성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재벌기업들의 편법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이미 알렌 ACGA 대표 인터뷰

◇해외 투자자들 "차등의결권 문제 심각…도입시 한국증시 더 외면"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들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와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 등은 최근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국민연금을 방문해 "차등의결권 도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이미 앨런(Jamie Allen) ACGA 사무총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뤄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상장사들은 지배구조가 미진한 부분이 있어 적정가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차등의결권까지 제도화되면 한국시장에서 이탈, 중국이나 일본으로 자금을 이동하겠다는 불만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ACGA는 1999년 홍콩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연기금과 투자사 등 113개 회원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 영향력이 상당하다. ACGA 지배구조 평가에서 한국은 아시아 12개국 중 9위(10위는 중국)에 머문다. ACGA는 매년 한국을 방문해 법무부, 금융위원회 등 유관기관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제안서를 건네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법무부가 지난 10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개최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앨런 총장에게 구글, 페이스북 사례를 들며 "한국은 비상장 벤처기업에만 차등의결권을 주자는데 문제가 되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페이스북은 상장 후 기업가치가 차등의결권으로 인한 주주 가치 손실을 넘어선다는 평가가 통했을 뿐, 사실 투자자들의 반대가 극심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최대 연기금 캘퍼스는 차등의결권 주식 매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다.

◇"차등의결권 도입하면 오히려 벤처기업 고사할 것"

그는 "혁신기업은 창업주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차등의결권이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페이스북조차 편향된 지배구조 문제가 불거졌다"며 "한국은 현 정권에선 제도가 잘 운영돼도 다음 정권에선 재벌의 경영세습용으로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우려"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에는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투자자금과 공격적인 액티브 자금 등이 혼재돼 있다"며 "차등의결권 기업에 대한 투자를 막지는 못하지만 투자자들의 컨센서스는 분명히 부정적이라는 점을 당국에 전달했다"고 언급했다.

오너가 소수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에서 차등 의결권까지 도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앨런 총장과 동행한 APG의 김정남 이사는 "한국은 차등의결권으로 벤처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기업을 고사시킬 것"이라며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스타트업에 의결권 손실까지 감내하며 투자할 자금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알리바바 등은 이미 크게 성장한 후 차등 의결권을 도입해 상장했을 뿐, 차등의결권이 기업을 성장시킨 동력이 아니었다고 김 이사는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기업들이 지배구조나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오너에만 유리한 결정을 내리다 보니 새로운 제도를 논의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고 털어놨다.

김정남 APG 이사 인터뷰

◇한국, 지나친 상속비용이 편법조장…상속세 대폭 낮춰야

이들은 특히 한국의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보완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상장사 오너일가의 경우 최대 50%의 상속세에 10~30%의 할증율(경영권 포함시) 까지 더해져 실질 세율이 65%까지 올라간다.

박유경 APG 이사는 "주요국은 상속세가 40~50%에 그치는데 한국은 유독 할증을 통해 최대주주에 큰 부담을 지운다"며 "오너 일가 입장에선 세금을 피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편법을 찾을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모든 주주들의 손실로 부메랑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최대주주가 소수지분으로 거대 그룹사를 지배한다고 문제가 되면 오히려 합법적으로 지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맞다"며 "한쪽에선 상속세를 올려 최대주주의 지분감소를 유도하는 정책이 펼쳐지는데, 다른 한편에선 적은 지분을 타박하며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한국 상장사들의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다시 도입하고 배당확대, 낡은 상법 및 주주총회 제도개선,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의견청취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