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파편화" 침묵하더니…고유정이 써 온 진술서 8장

지난 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2차 공판을 마친 전 남편살인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을 실은 교도소 호송 버스가 떠나려하자 한 시민이 버스에 달려들고 있다./사진=뉴스1

전 남편 살인 및 사체 손괴, 은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36)이 직접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나섰다.

고유정은 30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 열린 4차 공판에서 모두진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고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기억이 파편화됐다"는 이유로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날 고유정은 법정에서 사건 당시 상황을 상당히 상세히 묘사했다. 그가 교도소에서 직접 작성한 진술서는 A4 용지 8장에 달했다.

고씨는 "지난 5월은 그토록 보고싶었던 엄마와 아이가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던 날들이었다"며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해 지금까지 비현실적인 악몽 속에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씨는 "청주에서 갑작스럽게 아이가 유명을 달리했고 그 후 남편은 저에게 너와 내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면서 "아이를 마치 필요없는 물건 버리듯 내치려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친아빠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또 사건 당일 행적에 대해 고씨는 "전 남편이 키즈 펜션까지 따라올 줄 몰랐다"며 "그는 아침 9시에 만났어야 했는데 늦게 만났으니 교섭시간을 채우고 싶다고 했고 그 사람이 아이를 안고 바로 조수석에 타 그렇게 펜션에 같이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건과 관련해 고씨는 "아이가 수박을 먹고 싶다고 해 부엌 싱크대에서 물로 씻고 썰려고 수박과 칼을 가져갔는데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이 제게 다가와서 신체 부위를 만지기 시작했고 제가 뭐하는 짓이냐고 했지만 그 사람은 계속 저에게 가만히 있으라면서 금방 끝난다고 했다"고 자세히 말했다.

그러다가 고씨는 "그 사람은 칼을 들고 쫓아와 감히 재혼을 했냐, 혼자 행복할 수 있을거 같냐고 말했다"면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제 손에 칼이 잡혀서 눈을 감고 힘껏 찔렀다"고 했다.

이후 행적에 대해 고씨는 "아이를 재우고 펜션에 있던 수건과 걸레로 밤새 피를 닦았다"며 "끔찍한 성폭행을 당할 뻔 한 저는 도무지 정상이 아니었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작년 가을에 사놓은 도구가 생각났고 나쁜 행위에 이르게 됐고 미친 짓이었다"면서 "너무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교도소에 들어간 이후에 대해 고씨는 "교도소에서 뉴스를 봤는데 일상적으로 했던 모든 행동이 사건을 준비하려고 했던 것처럼 비쳐지는 것이 무섭다"면서 "검찰은 검색, 쇼핑, 사진촬영 등이 모두 계획 범행 증거라고 추궁했지만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졸피뎀 등에 대해서도 "제가 샀던 물건은 일상적인 물건이고 부엌칼도 할인하길래 식사를 위해 산 것일 뿐이고 졸피뎀도 카레에 넣은 적이 없다"며 "현 남편은 제가 아내가 아닌 다섯 번째 여자에 불과한지 저를 크게 모함하고 있고 처음에 공범 조사까지 받았던 그가 어딘가 있던 약봉지를 경찰에게 가져다 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원 2명은 모두 각각 실시한 증거품 이불에 대한 감정 결과 피해자의 혈흔과 졸피뎀이 검출됐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