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오로라를 찾아 떠난 여행

노르웨이 나르비크 외곽에서 만난 오로라/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오로라를 직접 보니 어땠어요?”

지난 겨울 북유럽에서 오로라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다. 내게는 여전히 오로라를 처음 만나던 순간을 몇 마디로 표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대답을 하려고 하면 깊게 각인된 장면 하나만 떠올랐다 지워질 뿐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한겨울에 오로라를 찾아 떠난 여행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캠핑카를 타고 출발한 뒤, 북쪽으로 가는 내내 비나 눈이 내렸다. 걱정이 컸다. 계속 이런 식이면 빈손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는데…. 날이 궂으면 오로라를 볼 수 없으니 하늘의 뜻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덴마크를 거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들어선 뒤로는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밤마다 고치 속의 누에처럼 침낭 속에 웅크렸지만 새벽이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노르웨이의 나르비크라는 도시에서 캠핑장을 찾지 못하고, 노숙하기 위해 외곽으로 나가던 어느 저녁이었다. 하늘의 선물은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순식간에 찾아왔다. 도로 옆 눈밭 위에 차를 세우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던 순간, 동행한 친구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렸다. “오로라다!” 그 말을 듣고도 한참 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로라가 자주 나타나는 지역도 아니거니와 조금 전까지 눈이 내렸는데…. 잠시 뒤 현실감각을 찾으면서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무엇부터 해야 하지? 그래, 카메라!

부랴부랴 장비를 챙겨 달려나갔다. 아! 정말 거기 오로라가 있었다. 길이 어둠 속으로 몸을 묻은 곳, 그 위로 하늘이 활짝 열리고 비단 같은 푸른 띠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첫 셔터를 어떻게 눌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보니 삼각대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눈밭에 무릎을 꿇은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로라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안에서 탄성과 신음이 아우성쳤다.


셔터를 누르는 중에도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게 정말 오로라라는 것일까? 저 푸른 덩어리는 누가 만들어냈을까?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하늘이 두른 베일은 끊임없이 너울거렸다. 누군가 레이저 빔을 쏘아 올리는 것도 같았고 누군가 밤하늘에 쓱쓱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같았다. 한탄이 절로 나왔다. 대체 인간의 언어는 왜 이리 빈곤하단 말인가. 그 광경을 묘사하기에는 어떤 언어도 부질없어 보였다. 오로라는 하늘이 처음 문을 열고 태양이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거기 있었다. 까마득한 훗날 생겨난 사람들이 더듬거리며 만들어낸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북유럽으로 가는 길에는 끝없는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과학적 설명이 별로 내키지 않지만, 굳이 따지고 든다면 오로라는 태양과 지구가 함께 만들어낸 발광(發光) 현상이다. 태양에서는 빛뿐 아니라 대전입자(帶電粒子, 플라스마)라는 이름의 전기를 띤 입자를 방출한다. 이를 태양풍(solar wind)이라 하는데, 태양에서 지구에 도달하는 과정을 거치며 대부분 지구 자기장 밖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그중 끝까지 남은 일부는 지구 자기장(磁氣場, magnetic field)이 끌어당겨 대기로 진입하게 된다. 자기장과 결합한 입자들은 지구의 양극 지방으로 내려오는데, 그때 지구의 공기분자와 반응하여 빛을 내는 현상을 오로라라고 한다.

하지만 오로라 앞에서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그리 달갑지 않다. 굳이 원리를 알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분석보다는 차라리 꿈을 담은 눈으로 바라볼 일이다. 꿈을 잃은 세상은 너무 삭막하다. 하늘은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겨놓고 있는지. 오로라를 보면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너무 오만하게 살았구나. 뭐든지 다 본 척, 뭐든지 다 아는 척하며 살았구나.

그날 이후 계속 북쪽으로 올라갔지만 하늘은 오로라를 보여주는데 인색했다. 인간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자각만 뚜렷해졌다. 오로라를 찾아가는 여행은 잃어버린 꿈을 좇는 과정이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확실히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오로라를 묘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