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으로 태어난 '레이디 맥베스', 허망한 권력욕을 들추다

소리꾼 정은혜는 창극 '레이디 맥베스'의 '레이디 맥베스' 역을 맡아 권력을 탐하다 파멸에 이르는 연기를 선보인다. /사진제공=국립국악원

남편에게 살인을 부추겨 왕좌에 오르게 하는 레이디 맥베스. 부당하게 왕권을 찬탈한 기쁨은 잠시, 불안이 부부를 옥죈다. 맥베스는 축하연 중에 자신이 처치한 정적들의 허상을 보며 공포에 떨고 레이디 맥베스는 씻기지 않는 피 묻은 손을 닦으며 절규한다. 몽유병으로 인한 병세가 날로 심각해진 레이디 맥베스는 궁중의사 전의가 유도하는 최면 속에서 "죄의식에 사로잡혀 파멸에 이르렀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남편의 살인을 종용하는 맥베스 부인에게 초점을 맞춰 재창작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가 이번엔 창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꾀한다. 오는 21일부터 30일까지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에 오르는 창극 '레이디 맥베스'다.


'레이디 맥베스' 역은 소리꾼 정은혜가 맡았다. 전의 및 맥베스 역에는 1999년부터 연극 '레이디 맥베스' 무대에 오른 배우 정동환이 나선다. 창극에서 새롭게 추가된 '도창' 역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염경애 명창이, '소리시종' 역은 정악단의 박진희가 맡았다.

프로그램은 올해 초 정해졌지만 권력을 탐하다 파멸하는 맥베스 부부의 모습에선 자연스레 시국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한태숙 연출은 "공연에만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시국이 불안정하고 상실감도 있을 때 이 작품을 하게 됐다"며 "권력을 과하게 탐닉하는 것과 종말에 대한 많은 상징성이 담겨 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공감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1998년 '레이디 맥베스'를 처음 창작한 한태숙 연출은 18년만에 창극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한 연출은 "작품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소리꾼 정은혜는 "어떤 욕망이 내 안에 있나 자문했을 때 꼭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나 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연상하며 연습했다"고 말했다.


배우 정동환은 "극과 이번 시국 상황이 맞닿는 것들이 많아 고치고 싶은 대사도 많았는데 한 연출의 결벽증으로 못 고쳤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양심과 욕심은 '한몸에 두 머리'라고 한다. 맥베스의 권력욕뿐만 아니라 일상의 아주 작은 욕망도 양심과 욕심 사이에 있다"며 "(이 작품은)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에 대해 잣대를 들고 거울을 비춰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창극의 음악은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작곡가 계성원은 가야금, 피리, 타악기에 서양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를 더했다. 레이디 맥베스의 죄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낮은 음역대의 악기를 추가한 것. 콘트라베이스와 가야금의 소리가 독특하게 어우러진다.

'레이디 맥베스' 무대 한 쪽에는 5미터 높이의 벽이 세워졌다. 배우들은 직접 숯을 개어 만든 재료로 그림을 그리며 내면의 악을 끄집어내는 장면을 묘사한다. /사진제공=국립국악원

배우들이 극 중 5m 높이의 벽판에 숯을 개어 만든 재료로 강렬한 단색화를 그리는 것도 특징. 기존 연극이 흙과 물 등 오브제를 이용해 극적인 표현을 이끌어냈다면 이번 창극에선 배우들이 직접 온몸을 활용해 또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예술가 이훈기는 "인간 내면의 파괴적, 절망적이고 음울한 욕망과 배신 등을 끄집어내는 걸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정구호 디자이너가 맡은 의상도 볼거리를 더한다.

공연은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5시에 열리며 25, 26일은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