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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이라는 가난에 새겨진 '행복'이라는 두 글자

'피란부산' 여행, 비석문화마을에서 임시수도기념관까지 '원도심' 즐기기…"부산 진가 제대로 느낄 기회"

어디로? 여기로! 머니투데이 부산=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7.04.15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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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산복도로 건너편엔 군락을 이룬 판자집이 밀집해 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200여 만명의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오는 바람에, 공터와 묘지, 산 비탈길 등 터가 있는 모든 곳은 주거 공간이 됐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부산 산복도로 건너편엔 군락을 이룬 판자집이 밀집해 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200여 만명의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오는 바람에, 공터와 묘지, 산 비탈길 등 터가 있는 모든 곳은 주거 공간이 됐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고 최민식 사진작가의 작품엔 삶에 대한 피란민의 의지와 생생한 가난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흑백으로 채색된 ‘날 것’의 풍경은 때론 밑바닥 인생의 설움이 읽히고, 때론 자그마한 행복의 단면이 스친다.

미국 신부 알로이시오가 펼친 피란민 아이들을 향한 헌신과 자비는 한 움큼 눈물도 부족할 만큼 감동적이다. 알로이시오는 최 작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가난을 찍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찍어라.”

가난이 하염없이 힘없고 불쌍하고 기댈 곳 없는 이들을 짓누를 때, 어김없이 서로를 묶는 ‘연대’의 힘은 더 크게 타올랐다.

부산의 피부는 제법 낭만적이지만, 속살은 잿빛이다. 속살을 보기 전까지 부산은 바다의 풍광을 즐기는 낭만의 도시로 수렴되지만, 도시명이 의미하는 ‘산’으로 올라가면 아픔과 가난이 배어있는 애틋한 정서의 마을로 정의된다.

해운대와 광안리, 태종대로 각인된 화려한 부산 뒤편에 자리 잡은 보수동, 광복동, 아미동 등 원도심의 풍경은 잃어버린 우리 삶의 거울이자 역사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죽은 자와 산 자의 ‘공존’

부산 아미동 산 19번지 비석문화마을.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들의 공동 묘지 위에 갈 곳없는 피란민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부산 아미동 산 19번지 비석문화마을.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들의 공동 묘지 위에 갈 곳없는 피란민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부산 여행의 새로운 콘텐츠는 ‘피란부산’이다. 산복도로 주변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판잣집은 가난의 상징이면서 행복의 뿌리였다. 1950년 6.25 전쟁에 피란 온 사람들은 대부분 산 위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산복도로 중 피란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동네가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다.

대전에서 열차를 타고 1950년 6월 29일 부산에 도착한 피란민들에겐 주소지 한 장이 주어졌다. 살길이 막막했던 이들이 찾아간 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묻힌 공동묘지. 살기 위해선 2평 남짓한 직사각형 묘곽 위에 집을 지어야 했다. 납골묘 위에 천막 등을 덮어 만든 집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였다.

때론 무덤을 판 뒤 발견한 유골의 개수만큼 제삿밥을 내놓으며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의 삶’을 꾸렸다. 묘지와 묘지 사이의 빈 공간은 지금의 골목이다. 피란민들과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은 아직도 이곳을 지킨다. 영화배우 김윤석의 아버지도 이 마을 거주자라고 여행사 부산여행특공대의 손민수 이사는 전했다.

가장 가난한 동네, 영주동…판잣집이라는 가난에 새겨진 이름 ‘행복’

부산 영주동 일대는 노인들이 주로 몰려 사는 가장 가난한 동네로 인식된다. 땅에서 500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산 비탈길 옆에 판자집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 집들의 불빛은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냄새 나서 더 정겹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부산 영주동 일대는 노인들이 주로 몰려 사는 가장 가난한 동네로 인식된다. 땅에서 500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산 비탈길 옆에 판자집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 집들의 불빛은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냄새 나서 더 정겹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6.25 전쟁 전 인구 47만 명이던 부산은 전쟁 이후 217만 명의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살 곳을 찾던 그들에겐 공터와 산, 묘지가 집이었다. 초량동과 수정동, 영주동 일대는 그런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중 가장 가난한 동네로 인식된 영주동은 판잣집의 보고다.

땅에서 500계단까지 올라가는 비탈길에 수놓인 판잣집과 아파트는 그 자체로 경관인데, 촘촘히 섞여 있는 집들 하나하나가 살아온 스토리를 가진 듯하다. 세월의 퇴적이 알리는 가난이라는 두 글자 사이에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며 버티는 삶의 무게들이 시나브로 다가왔다.

손민수 이사는 “해운대의 화려한 불빛보다, 밤하늘의 별보다 더 아름답고 사람냄새 나는 불빛이 매일 저녁 판잣집에서 나오는 것 같다”며 “부산의 정체성과 가치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영주동 ‘역사의 디오라마’에 들르면 산복도로를 비롯해 부산항대교, 판잣집 등을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다. 이곳 근처 친환경 스카이웨이 전망대에서 보는 야경도 색다르다. 벚꽃 사이로 보는 항구의 야경이 묘한 설렘을 준다.

전쟁 이후 ‘3년의 수도’ 임시수도기념관, 가난한 자의 벗 마리아수녀회

부산은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일까지 한국전쟁 1129일 이어지는 가운데 1023일간 임시수도로 사용됐다. 임시수도기념관에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와 기념관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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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일까지 한국전쟁 1129일 이어지는 가운데 1023일간 임시수도로 사용됐다. 임시수도기념관에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와 기념관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6.25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부산은 평화로운 관광지이지만, 반세기 전 이곳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로 행정의 중심지였다.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일까지 한국전쟁이 1129일 이어지는 동안 1023일을 수도로 사용한 것. 임시수도기념관에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와 기념관이 들어섰고 당시 생활상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지금의 경남도청 자리는 정부청사로 사용했다.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마리아수녀회는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마리아수녀회를 설립하면서 보여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희생정신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 신부의 노력으로 피란민들의 자녀들은 먹을 수 있었고, 배울 수 있었고 살아날 수 있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부산을 시작으로 필리핀, 멕시코 등지를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펼쳤고, 루게릭병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 희생은 멈추지 않았다. “애덕은 누구나 쌓을 수 있지만, 가난은 지키기 힘들다.” 평생 구두 한 켤레, 침대와 책상 하나로 가난을 자처한 알로이시오 신부를 향한 한 수녀의 평가다. ‘피란부산’이 주는 사랑과 나눔의 가치는 기록이 보존되는 한 계속될 듯하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4월 14일 (05:42)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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