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우려시 감사인 지정' 논의 본격화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일정기간 기업에 강제 지정하는 '감사인 지정제도' 적용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수면 위로 불거졌다.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검토에 나섰고 관련 법안도 발의됐다.

기업들의 재무상황 악화에 따라 분식회계 유혹이 커질 수 있는데다 회계업계의 과당 출혈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기업과 회계법인간 유착이나 경제적 종속을 막자는 취지이다.


이미 지난달 29일에 금융감독원 산하 금융감독자문위원회에서 회계학계는 감사인 지정 확대를 포함한 회계투명성 제고 방안을 보고했다. 감사인 지정 확대는 회계업계가 지속적으로 필요성을 제기해왔으나 금융당국에 공식 보고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보고에서 회계학계는 감사보수가 지나치게 낮은 경우나 회계법인에 재무제표 대리 작성을 요구하는 기업을 지정감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주식회사 외감법'은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이나 관리종목 지정, 감사인 선임 절차 위반, 분식회계 적발 등 감리 결과 조치 기업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가 제재 조치의 하나로 일정기간 기존 회계법인을 대신해 외부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외감법인과 계약하는 자유수임제다.


그러나 회계법인간 저가수주로 인한 출혈경쟁과 감사 수임료 하락, 이에따른 감사품질 저하 우려가 커지면서 감사인 지정 확대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 중소기업은 외감법인에 제무제표를 대리작성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있다.

회계감사는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도 회계법인이 감사 대상인 기업에서 수입을 얻는 구조로는 독립적인 외부 감사를 벌이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금감원이 지난해 상장법인의 감사의견을 분석한 결과 감사인을 자율적으로 선임한 상장사의 경우 '비적정' 의견이 1.6%에 불과했으나 지정 감사인의 경우 비적정 의견이 15%로 10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지정 감사인이 독립적이고 엄정한 감사의견을 표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홍익대 정영기 교수는 최근 회계학회 주관 회계투명성 공청회에서 "감사품질 저하나 회계부정 가능성을 막기위해 현행 자유수임제에 대한 보완책으로 감사환경이 악화된 업종에 대해서는 감사인지정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관련, 김기식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분식회계 위험이 있는 기업에 대해 지정감사를 실시하는 내용의 '주식회사 외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거나 부채비율이 일정 이상인 기업 등 분식회계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대해서도 감사인을 당국이 지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김 의원은 "최근 동양 사태는 물론 효성의 대형 분식회계 사건 등에서 외부감사 등 자율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지만 법안 발의가 이뤄진 만큼 본격적인 공론화에 나설 방침이다. 고인묵 금감원 회계제도실장은 "감사인 지정은 자유수임 원칙에 어긋나고 통상 보수액이 50~100%가량 상승해 기업 부담이 커진다는 비판도 있다"며 "적용시 파장이나 장단점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손주형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은 "감사인 지정제도 확대 취지에 공감하지만 문제는 합리적인 기준을 찾아야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