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수요시위…"돌아가신 할머니 한 꼭 풀리길"

(서울=뉴스1) 성도현 기자,정재민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014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1159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한 아이들이 올해 돌아가신 황금자, 배춘희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있다. 2014.12.31/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2014년의 마지막날인 31일 낮 12시, 들뜬 연말 분위기 속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바라며 거리에 나선 시민들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은 가득 찼다.


올해 53번째이자 마지막 수요시위가 열린 이날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새해를 맞는 설렘이 묻어났다. 털모자와 장갑 등을 준비해 온 이들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서로 웃으며 피켓을 든 채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제1159차 수요시위가 열린 이날은 올해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고(故) 황금자·배춘희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제를 중심으로 열렸다.

두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한 상도 따로 준비됐다. 상 위에는 두 할머니의 생전 사진과 '이름없이 희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명패도 놓였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길원옥(87) 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두 할머니의 사진 앞에 분홍색 장미꽃을 올려 놨다. 이어 시위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뒤따라 헌화했다.

참가자들은 꽃을 올려놓고 돌아서며 울먹이기도 했고 모자를 벗고 5초 동안 기도를 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길원옥 할머니는 "(한국 정부는)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되고 (일본 정부는) 얼른 죄를 뉘우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 1월 눈을 감은 황금자 할머니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활지원금을 쓰지 않고 모아 지난 2006년 강서구청 장학회에 전 재산을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숨진 배춘희 할머니는 생전에 수요시위 맨 앞 자리를 지키며 일본정부의 사죄와 법적배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할동했다.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014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1159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올해 돌아가신 황금자, 배춘희 할머니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2014.12.31/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황금자 할머니 봉사를 맡았던 최은영(44·여)씨는 "살아계실 때 마지막 2년7개월은 맛있는 음식도 못 드시고 병원을 오가셨다"며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구부러진 손가락과 앙상한 몸을 보면 늘 죄송스러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최씨는 "할머니께서 주먹을 쥐고 가슴을 치실 때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지금도 안타깝다"며 "늦게라도 할머니의 가슴의 한이 꼭 풀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위안부 소녀상 옆 빈자리는 그 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두 할머니의 빈자리"라며 "동시에 우리가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의) 목소리와 다리가 되겠다는 연대의 의자"라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들이 원했던 세상을 앞당길 수 있는 건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며 "해방 7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새로운 희망이 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대협은 "(1991년 이후) 지난 20여년의 수요일은 변함없이 가장 앞 줄을 지켜온 할머니들과 그 손을 맞잡은 이들의 채워 온 평화의 역사"라며 "고단했지만 숭고했던 삶을 산 두 할머니를 우리 가슴 속에 새기며 명복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서울 은평구 예일여고 역사동아리 '아이비' 학생들은 "저희에게 할머니들은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라며 "할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하며 추모 인사를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인 '희망나비' 회원들도 "할머니들이 가르쳐주고 가신 평화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폭력과 차별 없는 세상, 자유와 인권, 평화와 희망의 목소리가 전세계에 울릴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제가 끝난 뒤 일부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 온 손편지와 그림 등을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에게 건네며 새해 인사를 했다. 두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았다.

손편지 전달을 기획한 신웅식(30) 경기 신일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소리굽쇠'를 본 뒤 할머니들의 삶을 안타깝게 여기고 공감했다"며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꼭 받길 원한다는 각자의 바람을 담아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한편 찬 날씨 속에서 1시간쯤 진행된 이날 시위에는 광영여고 대홍나비, 예일여고 역사동아리 '아이비', 한국여성단체연합, 평화와통일을만드는사람들, 희망나비 등에서 500여명(경찰 추산 250여명)이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올해 마지막 수요시위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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