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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하여가’에 재능기부, 엘비스 프레슬리 무대 오프닝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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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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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0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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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신의 이름 내건 음악극 ‘김덕수전’ 펼치는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우리 전통예술의 맛과 멋 알릴 것”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악극 '김덕수전'을 오는 28~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연다. 그는 "내 음악인생의 고해성사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악극 '김덕수전'을 오는 28~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연다. 그는 "내 음악인생의 고해성사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인터뷰를 끝마칠 때 즈음, 세상 모든 음악은 김덕수(68)로 모이는 듯했다. 사물놀이 창시자 정도로 이해하고 ‘우리 가락 장인’에 한정했다간 큰코다칠 뻔했다. 그보다 더 크고 깊은 음악의 포용성이 있었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의 다양성이 존재했다.

“서태지 ‘하여가’ 때 돈 한 푼 안 받고 재능 기부했잖아요. 한상원, 김광민, 정원영 등 재즈 1세대들 버클리 음대 유학 가기 전에 다 제자로 가르쳤지. 그뿐인가요. 라스베이거스 엘비스 프레슬리 공연 때 오프닝쇼도 우리가 도맡아 했죠. 스티비 원더,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전설적인 아티스트와 협연도 했지.”

쉴 틈 없이 쏟아내는 통에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의 열변은 어떤 뮤지션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경력을 대변하고 있었고, 그의 경험은 오늘의 현주소를 증명하고 있었다.

사물놀이를 창시한 지 42년, 올해 데뷔 63주년을 맞은 김덕수에게 음악은 음표와 박자 그 이상이다. 점이 만나 선이 되는 ‘계산된 합’이 아니라 면으로 훌쩍 뛰어오르며 황홀하게 마주하는 ‘미지의 세계’다.

그 세계는 늘 궁금했는데, 비로소 그 실체를 면밀히 엿보는 무대가 마련된다.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무료로 관객과 만나는 ‘김덕수전(傳)’이 그것. 홍길동전· 춘향전에 비하면 생소한 네임 밸류지만, 공연 내용과 질로는 뒤지지 않을 만큼 김덕수의 일대기가 흥미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 /사진=김휘선 기자<br />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 /사진=김휘선 기자
“제가 10여 년 전부터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사물놀이 공연을 추구했어요. 이번 무대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형식을 담아 영화 같은 음악극이 될 겁니다.”

그의 혁신은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1957년 5세 때 아버지를 따라 남사당에 데뷔해 전국을 돌았고, 7세 땐 대통령상까지 받는 장구 신동으로 이름을 떨치며 승승장구했다.

13세 때 첫 해외 공연인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등 월드투어에 나서면서 1년에 6개월은 해외 공연을 하며 우리 전통예술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전통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본질이 무엇이냐’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신나는 소리를 들려주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 장단에 맞춰 다들 덩실대며 춤을 추는 데, 그게 전통이라는 얘깁니다. 그 장단(리듬)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움직이게 하는 근본인 셈이죠. 그걸 이제 어떻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느냐가 제게 숙제처럼 다가오더라고요.”

우리만이 지닌 세계적인 맛과 멋을 위해 창조한 사물놀이는 ‘국악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찬사와 함께 ‘젊은 연주자의 이탈’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하지만 맛과 멋에 대한 전통의 근본 인식이 존재하는 한, 그의 혁신은 멈출 수 없었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5년간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사물놀이는 지금 시각으론 ‘융합’의 성공작이었던 셈이다.

올해 데뷔 63주년을 맞은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는 지난 인생에서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을 5세 때 첫 무대를,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아끼던 동료의 죽음을 꼽았다. /사진=김휘선 기자<br />
올해 데뷔 63주년을 맞은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는 지난 인생에서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을 5세 때 첫 무대를,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아끼던 동료의 죽음을 꼽았다. /사진=김휘선 기자

“모든 전통예술의 지휘자는 타악이에요. 그중에서도 장구가 으뜸이죠. 대한민국 리듬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밖에 없어요. 그 악기들이 없으면 전통예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사물놀이는 새로운 걸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전통 악기들에 무속이든 농악이든 별의별 장르들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거예요. 코리안 록이자 코리안 재즈의 탄생인 거죠.”

리듬은 음이 없는 무율(無律)이지만, 김덕수 사물놀이의 리듬은 선율이 살아있다. 징을 예로 들면 한 번 두드릴 때, 리듬의 길이와 세기를 통해 얼마든지 음을 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단을 알면 선율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장단을 배우면 춤을 추게 되는 것도 김덕수 리듬의 특징이자 재해석이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리듬을 먼저 가르치지 않고 단소부터 가르치니 전통예술에 대한 포기가 빨라요. 우리 리듬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려지는 건 어릴때부터 리듬을 먼저 배운 외국인이 우리 리듬에 더 쉽고 민첩하게 반응하기 때문이에요.”

그의 사물놀이가 유명 아티스트의 러브콜을 잇따라 받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프로가 프로를 알아준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재즈 뮤지션들이 좋아했어요. 그들이 보기에 우리 리듬은 아프리카 것도, 인도 것도, 라틴 것도 있는 맛과 멋의 결집체예요. 우리 것은 서양의 메트로놈에 맞춰진 리듬이 아니라, 혼합박이죠. 한 장단에 여러 박자가 골고루 섞이다 보니, 재즈의 즉흥적 느낌이 배어있어요. 한글의 포용력처럼 우리 리듬의 포용력이 상당합니다.”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는 "우리 리듬은 누구나 좋아하는 보편적 맛과 멋이 살아있다"며 "앞으로 우리 소리가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더 힘차게 달리겠다"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br />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는 "우리 리듬은 누구나 좋아하는 보편적 맛과 멋이 살아있다"며 "앞으로 우리 소리가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더 힘차게 달리겠다"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지난 60여 년 간 환희에 찬 순간과 절망적인 순간 하나씩 꼽아달라고 했다. 그는 “어른 어깨 위에 올라가서 재주 부리던 5세 때, 내 밑에서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고 세상 다 가진 듯한 경험이 아직도 선명하다”며 “그 첫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1984년 단짝 연주자였던 김용배의 탈퇴와 사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아직도 고통스러운 상처로 남아있다. “처음엔 배신감도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의 어려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적지 않아요. 후회와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죠.”

‘김덕수전’은 지난 세월 고해성사처럼 풀어낸 자기 독백으로 읽힐 법하다. 공연은 그러나 개인사를 넘어 우리 예술의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도 두루 맛볼 수 있다. 그의 말처럼 그 전에 없었던 전통 이론을 만들고 세계에 우리 예술이 뿌리내리는 작업도 병행하기 때문이다. 힘들고 척박한 상황에 찾아온 단비 같은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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