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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도와주이소"… "대신 비밀입니다,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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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이상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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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9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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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 1997년초 미국 워싱턴D.C., 당시 미 연방하원의 유일한 한인 의원이던 김창준(제이 김) 전 의원에게 국제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발신지는 청와대. "각하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의 전화였다.

북한이 대만에서 핵폐기물을 들여오는 걸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한국 정부가 김 전 의원에게까지 SOS를 친 것이다. "김 의원이 함 도와주이소." 모국 대통령의 청을 뿌리칠 순 없었던 김 전 의원은 뉴트 깅리치 당시 하원의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김 전 의원의 노력 덕분에 그해 6월 미 하원은 대만과 북한의 핵폐기물 거래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의 압박을 못 이긴 대만은 그해 말 북한으로의 핵폐기물 수출을 포기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 하원의원 한 명의 힘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전화 통화 후 청와대에서 김 전 의원을 만난 YS는 "우릴 도와주는 게 미국 의원 신분에 해가 되진 않느냐"고 걱정했다. 김 전 의원은 미국 시민권자가 다른 나라를 돕는 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이 모든 걸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YS는 2015년 서거할 때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미국 연방하원의원 한인 당선인 4명/ 사진=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트위터 캡처
미국 연방하원의원 한인 당선인 4명/ 사진=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트위터 캡처
# 11월3일 미국 선거에서 한인 4명이 연방하원에 동시 입성했다. 약 120년에 달하는 미국 한인 이민 역사상 최대 쾌거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미셸 박 스틸(한국명 박은주)과 영 김(김영옥), 워싱턴 주에서 메릴린 스트릭랜드(순자)가 첫 한인 여성 연방의원의 영예를 안았다. 뉴저지 주에선 앤디 김이 재선에 성공했다. 정당도 앤디 김과 메릴린 스트릭랜드는 민주당, 미셸 박 스틸과 영 김은 공화당으로 균형을 맞췄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한인들은 중국인들보다 의원 배지를 달기가 어렵다. 대체로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에 몰려살지만, 한인들은 돈은 한인타운에서 벌어도 집은 학군 좋은 백인 동네에 두는 경우가 많아서다.

LA(로스앤젤레스)나 뉴욕 퀸스, 뉴저지 펠리세이드파크 등 일부 한인타운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한인들이 흩어져 살다보니 미국 선거에선 한인 표가 상대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한인들은 백인이나 흑인보다 투표율도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선출직으로 뽑혔다는 건 한인 사회뿐 아니라 미국 백인 주류 사회의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앤디 김의 재선은 뉴저지 주에서도 한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남부 지역에서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 미국 한인 의원들에겐 지역구가 2개란 말이 있다. 진짜 지역구 외에 주변 한인 사회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다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도 손을 벌리기 일쑤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지금은 잦아들었지만, 지난해까지도 한국에서 정치인이나 기관장이 오면 한번 만나달라는 요청이 한인 의원들에게 쏟아졌다. 특히 연방의회의 유일한 한인 의원이었던 앤디 김에게 이런 요구가 집중됐다.

오죽하면 한인들 사이에서 "앤디 김 좀 그만 불러내라" "이러다 앤디 김 재선 실패하면 어쩌냐"는 말까지 나왔겠나. 다른 나라 챙긴다고 소문난 의원이 지역구에서 곱게 보일 리 없다.

재선에만 불리한 게 아니라 자칫하다간 법적 문제에도 휘말릴 수 있다. 미국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르면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미국인은 원칙적으로 미 법무부에 등록해야 한다. 이후엔 6개월마다 해당 활동을 신고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는다.

1938년 당시 독일 나치와 소련 공산당 등 외국 세력의 미국내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제정된 이 법은 그동안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다. 그러나 2016년 대선 이후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를 계기로 단속이 대폭 강화됐다.

# 미 연방하원의 한인 의원 4명은 우리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외교적 자산이다. 미국뿐 아니라 북한, 중국, 일본을 상대할 때도 강력한 우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니 무조건 도와달라는 투박한 방식으로 접근하다간 이 몇 안 되는 보물마저 잃을 수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과도 관련된다는 논리가 있어야 이들도 움직일 여지가 생긴다.

김 전 의원이 깅리치 전 의장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핵폐기물 유출로 주한미군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논리 덕분이었다. 이스라엘의 수호천사인 미국 유대인들처럼 양국 공동의 이익 또는 양국관계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세련된 접근이 요구된다.

"함 도와주이소"… "대신 비밀입니다,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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