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단지, '박원순표 흔적 남기기→지우기' 나선다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 부지 전경. 부지 중간 지점에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429동, 445동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제공=개포4단지 재건축 조합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옛 아파트 건물 일부를 남겨 보존하는 이른바 '박원순표 도시재생'으로 골치를 썩어 온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전 시장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다음달 새 서울시장이 당선되면 박 전 시장이 추진했던 도시재생 정책을 취소해 달라고 건의할 계획이다.

게다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박 전 시장이 남겨 놓은 재건축 현장 내 '흔적 남기기' 규제를 없애겠다"고 밝히면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주민 의사 무시한 '흉물' 남기기에 불과…"새 서울시장과 협의"2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은 새 서울시장에 옛 아파트 건물 일부를 그대로 남기는 방식 대신, 공원화 등 다른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개포주공1단지 조합 관계자는 "(서울시장이 공석이 된 이후) 시기를 봐서 서울시에 건의할 계획이었는데 오 후보가 규제를 없앤다 했다"며 "오 후보가 당선된다면 선제적으로 정책을 내놓지 않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도 서울시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옛 아파트 흔적을 그대로 두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인 공원 등으로 꾸미는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개포주공1단지는 재건축하더라도 기부채납 부지에 있는 아파트 1개동(15동)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 전 시장이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자산을 보존하겠다며 '서울시 문화유산 흔적남기기' 정책을 펼치면서다. 아파트 역시 옛 생활을 볼 수 있는 유산이라며 재건축 단지에도 이 정책을 적용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흉물'에 불과하다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개포주공1단지 조합원들은 지난해 8월 "주민들의 바람과 의사를 무시한 서울시의 일방적인 도시계획 심의 행정"이라며 "차라리 미래유산을 위한 전시관 형태인 청소년 문화시설로 대체해달라"고 서울시에 청원을 넣기도 했다.

개포주공4단지 역시 기부채납 부지에 있는 429동과 445동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남개발 초기 저층 주공아파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었다.

개포주공4단지 조합은 지난해 말부터 강남구청에 한 동은 철거하고, 공원부지에 있는 다른 한동은 건물 일부만 남기는 방안을 건의해왔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조합 관계자는 "새로운 서울시장이 당선되면 시에 가서 협의를 할 것"이라며 "재건축 현장에 공공건축가가 와 있는데, 이 인물이 사실상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어 이같은 부당함도 지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부지 /사진=뉴스1

구치소 흔적 남기기까지…구청, 재검토 건의옛 성동구치소 부지 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이날 성동구치소 부지에 1300가구가 들어가는 공동주택과 역세권 업무시설을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 중 시설물 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이곳 역시 일부 시설을 남겨 둬야 해 주민들의 원성이 높다. 서울시는 근대 교정정책을 설명하는 문화 유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관할 자치구인 송파구는 서울시에 재검토를 건의한 상태다. 송파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흔적 남기기 싫다고 계속 반발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서울시에서 성동구치소 담장과 감시탑 보전 범위를 다루는 용역을 진행 중이어서 재검토를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시는 청량리4구역 내에 집창촌 일대 건물을 보전하는 '청량리 620역사문화공간' 조성을 추진해 주민들과 갈등을 빚다, 결국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