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윤석열과 키치(Kitsch)

'키치'(Kitsch)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학과 관련된 독일어인데 사전적 의미는 고급문화를 흉내 내는 저급문화를 뜻합니다. 키치는 겉은 그럴듯하고 화려한데 실제로는 알맹이가 없어, 예를 들면 중세의 성 모양으로 지은 러브호텔 같은 것입니다.

키치라는 난해한 단어가 널리 퍼진 것은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린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관통한 키워드가 키치입니다. 쿤데라는 이 소설에서 현실의 이면을 부정하고 이상이나 감동적 이미지만을 신봉하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키치를 재해석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키치의 예를 보면 이상주의자인 대학교수 프란츠가 캄보디아의 인권유린에 항의하기 위해 혁명전선에 나갔는데 실제는 혁명은커녕 허망하게 길에서 살인강도를 만나 죽는 것입니다.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의 세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정치인들입니다. 모든 정치 이데올로기나 슬로건은 사실 키치입니다. 대선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동의 야권 대선주자 1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총장 재임 당시 문재인정부의 개혁을 상징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가족은 물론 주변 친인척까지 샅샅이 뒤져 자녀입시 비리, 채용 비리, 사모펀드 비리 등으로 조국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그의 동생, 5촌 조카를 구속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의 수사로 드러난 조국 가문의 비리는 전형적 키치입니다. 개혁과 혁신의 아이콘인 줄 알았는데 속을 들여다보니 보통 사람들보다 더 저급하고 천박했기 때문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겠지요.

조국이 추락한 것과 대조적으로 윤석열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항해 싸운 정의와 공정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합니다. 덕분에 그는 정치인이 아닌데도 여론조사 지지율이 치솟습니다. 드디어 윤석열은 문재인정부를 '약탈정권'으로 규정하면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합니다.

그러나 곧 반전이 일어납니다. 의료인이 아닌데도 요양병원을 열어 23억원에 이르는 요양급여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부정수급한 혐의로 장모 최모씨가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됐습니다. 그의 아내 김건희씨는 본인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관련 논란에 이어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한 3건의 논문표절 의혹이 드러났고 국민대는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정식 조사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일가에 대한 수사와 검증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아내는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조작 의혹 등으로, 그의 장모는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공정과 정의라는 저울에 달 때 윤석열 일가와 조국 일가 중 누구 죄가 더 무겁고 누가 더 가벼운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결론은 조국이 '키치'라면 윤석열도 '키치'입니다. 정경심도 김건희도 당연히 키치입니다. 윤석열-김건희도, 조국-정경심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공정' '정의' '개혁'을 아무리 외쳐대도 인생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