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윤, 20년 버티니 대상이 찾아오다

문세윤, 사진제공=KBS

한 해의 방송가를 결산하는 각종 시상식에서는 조용하면서도 울림을 자아내는 수상자들이 등장하곤 한다. 최근에는 KBS에서 그런 사례들이 좀 있었다. 2003년 공개 코미디를 하는 개그맨 출신으로 박준형이 최초로 ‘연예대상’을 수상한 이후 2013년 공개 코미디로 김준호가 두 번째로 대상을 들었다. 2016년 ‘1박2일’을 지켰던 터줏대감 김종민의 수상과 2020년 김숙의 수상도 작은 울림을 일으켰다.


문세윤은 바로 지난해 KBS ‘연예대상’의 주인공이었다. 실질적으로는 2019년 12월 시작된 ‘1박2일’ 네 번째 시즌의 중심으로서 프로그램을 지탱했다는 공로가 컸지만 따져보면 2001년 데뷔 후 20년 동안 쌓아온 노력의 결실이 이제야 열매를 맺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문세윤은 이번 대상 수상을 통해서 명실상부한 대세 예능인으로 올라섰으며 2015년 IHQ ‘맛있는 녀석들’ 이후로 쌓은 버라이어티에서의 내공을 인정받았다.



문세윤의 수상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반응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조차도 그의 이름이 처음 호명됐을 때 “정말 내가 맞냐”며 의아해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은 화제성에도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고, 팬덤도 두텁지 않았다. 그는 출연 중인 ‘맛있는 녀석들’ ‘1박2일’이나 NQQ의 ‘고생 끝에 밥이 온다’ 그리고 KBS2 ‘갓파더’ 등에서도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았다.


2001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을 통해 등장했을 때 문세윤은 그 당시 데뷔했던 많은 ‘뚱보’ 캐릭터 중 한 명이었다. SBS 6기 공채 개그맨으로 여겨지지만 공채가 아닌 특채로 개그를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 KBS2 ‘개그콘서트’ 녹화 때도 방청객의 한 명으로 무대에 올라 재치를 선보였다. ‘웃찾사’에 합류한 후에는 문세윤 말고도 독한 캐릭터를 가진 뚱보 캐릭터 연기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는 그래도 연기를 할 때 본인이 나서기보다는 상대 연기자를 받치는 연기를 주로 하며 공력을 키웠다. 한편으로는 조금씩 자신의 저변을 넓혀 2006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씨름선수를 시작으로 연기도 시작했다. 지금 어떠한 예능적인 상황에도 다양한 캐릭터로 흐름을 이어가는 능력은 ‘극(劇)’이라는 표현 자체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능성 있던 개그맨이던 그를 예능인으로 발돋움시켜준 것은 IHQ ‘맛있는 녀석들’이었다. 2015년 시작 때만 해도 프로그램은 인기있는 개그맨 김준현을 중심으로 나머지 뚱보 캐릭터의 개그맨들이 뒤를 받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문세윤은 끊임없는 토크 속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발굴하고 계발했다. ‘막뚱이’ ‘문선생’을 비롯한 상황극과 한 입 만이 올 때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먹방 역시 그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이렇게 무대 밖을 벗어난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가공하는 방법을 배웠다.

'맛있는 녀석들' 시즌2, 사진제공=iHQ

‘맛있는 녀석들’은 2020년 김민경의 ‘운동뚱’, 문세윤의 ‘댄스뚱’ 등 자신들의 세계관을 확장한 기획을 선보인다. 문세윤은 운동에 매달렸던 김민경과 같이 각종 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며 ‘맛있는 녀석들’ 밖의 사람들과 섞였다. 그 과정에서 그의 넉살과 타고난 운동신경이 빛났음은 물론이다. 그는 그 즈음 KBS2 ‘1박2일’에도 합류해 본격적인 버라이어티의 내공을 키웠다. 그 2~3년 짧은 발전의 결과물이 연예대상인 것이다.


문세윤은 다른 개그맨에 비해서는 일찍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는 20대 후반이던 2009년 결혼해 무명인 상황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 당시 너무 힘들어 돌반지를 팔려다 이를 발견한 김숙에게 설득당해 500만원을 빌리고 돌아오는 길 눈물을 쏟았다는 에피소드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잔잔한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러 선후배를 챙기는 속 깊은 동료였고 그러한 그의 인성에 감복한 많은 이들이 이번 대상 수상을 함께 기뻐했다. 비록 짧은 시간에 각광을 받아 금세 거물급으로 성장하는 다른 예능인들의 전철을 밟지는 못했지만 그는 20년에 가까운 시간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자신을 다졌고, 열심히 사는 다짐을 잊지 않으며 결국 정상급 예능인으로 올라섰다.


우리가 예능인 1인자로 유재석을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진행능력이 있고, 선하고 스마트한 이미지가 있으며 예능의 흐름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가 1991년 대학개그제부터 방송가의 바닥을 훑고 올라왔던 경력을 알고 있고, 그 사이에 많은 무명의 시간을 견뎠던 고충을 알고 있다. 그러한 시간 자체가 증거가 된다. 이러한 고생을 한 사람이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지금의 유재석을 만들었다.


문세윤의 성공기도 이와 비슷하다. 비록 유재석의 그것처럼 많이 발견되지 않지만 그는 훨씬 많은 시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 예능을 떠받쳐 왔다. 그의 연예대상은 꿋꿋이 이 곳에서 버티는 자가 결국 강한 자라는 것을 다시금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막뚱이’의 전성시대는 이제 시작됐다. 그가 줄 속 깊고 흐뭇한 웃음이 2022년 벌써부터 기대된다.